En Hakkore

[영적인 실천 28]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28]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8. 17:45

제 3장 위대한 변화

1.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아마 나이 많은 독자들은 40여년 전에 한 한 책이 나타나, 특히 그 책 중에서 알미니안에 관한 단락으로 종교계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그 책의 제목은 '두 번 태어난 사람들, Tuice born Men)인데,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베그비(Har. Begbie)에 의해 다소 음탕하고 선정적인 문체로 쓰여졌다.

그것은 구세군과 도시선교(City Missions)의 복음적인 노력의 결과로 성취된 악명 높은 난봉꾼들과 범죄자들의 깜짝 놀랄 만한 '회심' 사례들을 묘사하는 것을 그 취지로 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설사 그 특별한 책을 읽지 않았다 할지라도 인격의 개혁을 다룬 그와 유사한 책들을 읽어 보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베그비는 그 책의 저자로서 난봉꾼들과 범죄자들로부터 특별한 '간증'을 개인적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약 25년 전에 뉴욕에서 한 사람의 간증을 들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감옥에서 20번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던' 중년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출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의 공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라는 성경구절을 즐겨 인용하였다.

그 회심한 사람들 중 다수는 그들에게 발생한 은혜의 역사가 너무 완벽해서 그들의 옛 습관과 성향은 완전히 사라졌고, 또 이전의 길로 되돌아가려는 욕망이 손톱만큼도 일지 않으며, 과거에 그들을 사로잡았던 세상에 대한 모든 열망도 사라졌다고 간증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들로 만드셨으며, 옛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 것이 되었다(고후 5:17)고 선언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감히 그 간증에 대 논평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간주해 버린다.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활동에 감히 어떤 제한을 설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을 내서 그 사람들과 가깝게 사귀면서 그들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의 선(善)이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호 6:4)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한편 다소(Tarsus)의 맹렬한 핍박자의 내부에서 일어난 이적적인 전황을 명심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 우리는 마태복음 12:43-45의 말씀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위에 언급한 사람들의 경우가 일반적이거나 평범한 것은 아니며, 또 그 경우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회심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제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구원 역사(役事)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 어떤 사람들에게는 좀더 많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좀 적게 - 복종과 억제의 은혜를 전달하시는 것이 축복스런 사실임에는 틀림없지만 중생시에 하나님께서 옛 본성을 완전히 제거시키지 않으시며, '육체'를 근절시키지 않으셨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 분만이 "이 세상 임금(사단)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 즉, 사단의 불화살이 내게서 아무것도 태울 수 없으니 - 라고 단언하실 수 있었다. 이 땅에 살았던 가장 경건한 성인도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1)라는 사도의 슬픈 고백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외적인 죄로부터 자신을 보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특권이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은 우리에게 육체는 여전히 남아 있고 작동하며 성령을 거스린다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위의 언급된 사람들이 고린도후서 5:17을 그들의 '경험'을 묘사하는 데 사용할 때, 비록 그 구절이 그들의 경우에 적합한 것처럼 보이긴 해도 그들은 그 구절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절의 오용 결과로 많은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들이 비참한 노예로 전락해 버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가르침, 즉 만일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그들 내부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사 이후로는 악한 사상, 부정한 생각, 악한 욕망 그리고 세상적인 정욕들로부터 면제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한 후 얼마 오래지 않아서 그들이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옛 성향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내부의 부패성은 지금도 그들을 괴롭히며, 어떤 점에서는 과거보다도 훨씬 맹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의 마음의 재앙"(왕상 8:38)에 대한 고통스런 의식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의 결코 회심한 것이 아니며,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도 착각이라고 결론지어 버린다. 그리고 점점 심각한 비탄에 빠져버린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요구하시는 사역들 중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 하나는,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사 57:14; 참조, 62:10)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청중, 즉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하나님은 복음을 믿는 사람으로부터 내주하는 죄를 근심시키겠다고 약속하신 일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수정처럼 투명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믿고 참회하는 죄인을 죄에 대한 사랑과 죄책, 그리고 죄의 형벌과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시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를 죄의 현존으로부터 구속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의 이적이 그것에 복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되고 급진적이며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만 -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변화에 대해 뚜렷한 의식과 증거를 동반하고 또 이전에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약한 의식과 증거를 동반하여 일으키지만 - 그 은혜의 이적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녀온 '육체'와 악의 원리를 복종하는 사람들로부터 제거하셨다는 예는 단 하나도 없다. 비록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더라도 육체로 난 것은 여전히 육체이다.(요 3:6)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