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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27]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27]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8. 17:44

제 2장 하나님의 능력

5. 회심(回心)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렘 13:23). 없다. 페인트로 칠하거나 변장할 수는 있을는지 몰라도 변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은 죄악의 외적 행동은 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죄악의 내적 원리는 절제할 수 없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도 놀라운 이적이지만 불을 물로 변케 하는 것은 더욱 더 놀라운 이적이다. 마찬가지로 흙으로부터 인간을 창조하는 것도 신적 능력의 역사이지만, 죄인을 성인으로, 사자를 양으로, 원수를 친구로, 미움을 사랑으로 재창조하는 것은 전능자의 더 위대한 역사이다.

복음을 통하여 성령에 의해 효력있게 되는 회심의 이적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즉, 설교자들)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through God)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4,5).

이 점에 관해 차르닉(S. Chamock)이 잘 지적하였다.

"사람에게서 자존심과 자부심을 빼앗는 것과 자기 자시만큼 사랑하는 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처소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교만을 내던져버리며 완강한 정신을 십자가 밑에 굴복시키는 것과 자기 진보의 계획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 아래로 가라앚혀버리고 하나님의 영예를 위한 계획으로 대치하는 것은 어떤 다른 것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검을 휘두르는 쭉 뻗은 팔에서부터 기인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멸로 가득찼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가득차게 되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감각, 또 그의 영광에 대한 안목, 그리고 그의 지혜에 대한 찬양의 념(念)이 생기는 것, 그리고 그에게 감각적인 쾌락을 주던 습관적인 정욕들에 대해 미움과 혐오감을 가지게 되는 것과 전에는 사단과 자아의 지배 아래 살던 사람이 구속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은 그 자체에게 '모든 것을 복종시킬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의 승리의 행동이다."

8. 성도의 보호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무엇으로부터의 보호인가?' 아, 이 질문에 대해 어느 누가 충분한 답변을 해 줄 수 있으랴? 이 단락 전체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색하는 것도 유익하리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우리 안에 여전히 거주하는 죄의 지배로부터의 보호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무서운 이단으로부터의 보호이다. 그것은 또 언제나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노리는 사단으로부터의 보호이며,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으로부터의 보호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신앙이 곧 파선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음란으로 돌아서는 것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우리가 비록 물처엄 유악하긴 해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여 인내할 수 있다.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도 기이하다."

죄는 절대군주이다. 그리고 그의 백성은 아무도 그를 거역할 수 없다. 아담은 어느 누구보다도 죄와 더불어 싸우기에 유리했었다. 왜냐하면 죄는 타락한 인간 내부에 동맹군을 가지고 있어서 외부로부터 유혹만 하면 그 동맹군이 언제라도 인간을 팔아 넘길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는 아담을 대하여는 그런 이점이 없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아담을 압도했다. 한편, 선택받지 못한 천사들도 보다 탁월한 본성을 소유했고 하나님께 보다 가까이 있었으므로 죄와 싸우는 문제에 있어서 아담보다 훨씬 더 유리했건만 죄는 그들을 정복하여 그들을 하늘로부터 지옥으로 몰아내었다.

따라거 죄는 정복하기 위해 얼마나 강력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가! 그러므로 '사로잡힌 자를 재차 포로로 할 수 있는' 하나님만이 정복자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속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 계속되는 창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이듯이 은혜의 보존은 계속되는 중생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권능은 격렬한 유혹들을 약화 내지는 완화시키고, 그의 천사들은 유혹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능력은 사단의 힘을 쳐부순다.

내주하는 부패성의 반작용과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는 육체의 저항, 그리고 감각의 오류와 마음의 배회는 만일 그 은혜를 처음 불어넣었던 것과 동일한 강풍(強風)이 그 은혜를 본존하지 않는다면, 그 은혜를 억제 내지는 소멸시켰으리라.

하나님의 능력은 은혜를 이식시키는 데 나타난 것처럼 은혜를 완전케 하는 데에도 나타난다(벧후 1:3). 그리고 그것은 신앙의 말씀을 주입시키는 데 필요한 것처럼 신앙의 역사를 상취시키는 데에도 필요하다"(살후 1:11). (S.차르낙)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존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은 커다란 영예를 누린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내부의 부패성과 외부로부터의 유혹들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존함으로써 그들이 믿는 순간 천국으로 이주시켰을 경우 받았을지도 모르는 찬양보다 더 큰 찬양을 받고 있다.

고통과 슬픔 많은 이 세상에서 혹독한 시험과 시련, 희롱과 실망, 그리고 친구의 배신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짓 형제의 위험 등에 둘러싸여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을 보존하는 일은, 어떤 사람이 허리케인이 불고 있을 때 아무런 바람막이도 없이 불켜진 양초 한 자루를 들고 광활한 광야를 성공적으로 횡단한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이다.

전능한 은혜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복음의 설교자들이 판정한 대로 끝까지 불신자로 살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감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단언하는 바이다. 그렇다. 당신의 연약한 백성들에게 힘을 공급하시고, 또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히 3:14) 잡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대양(大洋) 한 가운데서 불꽃을 간수하는 것보다도 더욱 기이한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명상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확신과 신뢰를 훨씬 깊게 해준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4). 하나님의 능력은 아브라함의 확신의 기반이고(히 11:19), 바벨론의 히브리 세 청년(단 3:17)과 그리스도의 확신의 기반이다(히 5:7).

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신다"(고후 9:8)는 말씀이 계속해서 내 마음에 떠오른다. 우리 마음의 공포를 제거하고 평화를 충만케 해 주는 하나님의 능력의 대용품으로 적합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이 또 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한 민족을 배 한 척도 없이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빵과 물도 없는 사막에서 사십 년 간이나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셔거 통치하신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