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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25]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25]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8. 17:43

제 2장 하나님의 능력

3.귀신을 쫓아냄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여 있다"(요일 5:19). 그리고 그 악한 자의 마법에 걸려 족쇄에 채워져 무기력한 상태에 있다. 복음서를 통독하다가 귀신들이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르면 그 불행은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이 얼마나 우리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그러다가 구주께서 이 비천한 피조물들을 구속하시는 장면을 목도하면 우리는 곧 놀라움과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그러나 여러분은 우리도 역시 동일한  종류의 두려운 곤경에 빠졌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회심 전에 우리는 사단의 오예였고, 또 그놈의 자기 뜻을 우리에게 강요하였으므로 우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살았다(엡 2:2).

이 두려운 곤경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구속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에게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그치게 하거나 부는 바람을 잠잠케 할 능력조차 없다. 사단의 권세로부터 스스로를 구속하는 일에 인간은 무기력하였자는 사실은 누가복음 11:21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잘 묘사되어 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여기서 '강한 자'는 사단이고, 그 '소유'는 무기력한 포로, 즉 인간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에 축복있으리.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었다(요일 3:8).

이 사실 역시 그리스도에 의해 동일한 비유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눅 11:22). 그리스도는 사단보다 강하시므로 그의 권능의 날에(시 110:3) 사단을 정복하셔서 갇혀 있는(사 61:1)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신다.

그는 그의 성령으로 여전히 임하셔서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다(눅 4:18).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른 자에게 먹이를 결코 양보치 않으려는 사단에게서 우리를 강탈하신 분, 즉 "우리를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구속하셔서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분"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4. 회개를 일으킴

인간은 그리스도 없이 회개할 수 없다.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 5:31).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임금'으로서 그가 다스리시는 나라의 백성들만 회개케 하신다.

회개 행위는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는 것이며, 죄를 포기할 결심과 죄를 죽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 외에 아무것도 인간으로 하여금 할 수 없다. 한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오른 손을 사용하셔서 회개를 일으키신다.

그러나 죄는 그리스도밖의 사람에게 매우 탁월한 기쁨과 즐거움을 제공하므로 무한한 능력 외에는 아무것도 사람을 위해 언급한 행위들로 이끌지못한다. 거듭나지 못한 영혼에게 죄는 하늘과 땅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에게 죄는 자유보다도 더욱 소중한데, 왜냐하면 그는 전격적으로 자유를 포기하고 죄의 종과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죄는 또한 건강, 부, 권력, 신간보다도 더욱 소중한데, 이 사실은 인간이 죄를 위해 이 모든것들을 소비하는 것을 볼 때 확실하다.

인간에게 죄는 그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다. 인간이 죄와 생명 중 어느 것을 선택할까? 백명 중 아흔 아홉 명이 전자를 선택하고, 그것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기꺼이 잃으려 할 것이다.

죄는 인간의 자아(man's self) 이다. 마침 '죄'(sin)의 가운데 영어 글자가 '아이'(I-'나')인데, 이처럼 죄는 자아의 중심이고, 자아를 움직이는 세력이며, 자아의 생명 자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딤후 3:2)는 말은 그들의 마음이 죄와 결혼하였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또한 사람은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한다(욥 15:16). 따라서 그는 죄 업이는 존재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죄에 목말라 있으므로 그것을 충분히 마셔야만 만족스러워 한다.

이처럼 죄를 사랑하는 인간이 어떻게 즐거움을 버리고 슬픔으로, 그리고 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죄에 대한 혐오로 돌아 설 수가 있겠는가? 오직 전능하신 분의 능력 외에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들ㅇ; 하려고만 든다면 언제든지 회개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복음적 회개는 피조물의 고개짓이나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 2:25).

그러면 어떤 광기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임종시까지 회개를 미루도록 종용할까? 그들은 그들의 몸이 쇠약해져서 더 이상 움직일수 없을 때에야 그들의 영혼을 죄로부터 돌이킬 힘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육신이 건강할 때가 영혼을 죄로부터 돌이키기에 훨씬 더 쉬우리라.

만일 우리 속에 구원에 합당한 회개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만 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