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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9]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9]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7. 10:57

제 1장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신앙의 증거 2)

구원은 양면성이 있다. 법적인 면과 경험적인 면이 그것이다. 또 구원은 칭의와 성화로 구성된다. 나는 성자에게 뿐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위 모두에게 나의 구원을 빚지고 있다. 아, 슬프다. 오늘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이 사실을 설교하는 사람 또한 적도다.

나는 첫째로, 구원을 계획하시고 나를 선택하신 성부 하나님께 나의 구원을 빚지고 있다(살후 2:15). 디도서 3:4 "우리 구주 하나님"이라고 일컬어지고 계신 분은 바로 성부이다.

두번째로 나는 나의 구원을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의 가치있는 순종과 희생에 빚지고 있다. 성자께서는 나의 구주로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수행하셨고, 또한 나에 대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셨다.

세째로 나는 나의 구원을 거듭나게 하시고, 성화되게 하시며, 끝까지 보존하시는 성령님의 효력있는 역사에ㅔ 빚지고 있다. 그의 사역은 누가복음 15:8-10에서 탁월하게 나타나 있고 4-7절에 있는 목자의 사역과 동일하다!

디도서 3:5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중생과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단호히 확증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과 생활에 구원의 직접 증거를 보여주는 성령님의 '열매'의 출현이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존재증거를 발견하기 위하여 첫번째로 조사해야 할 대상은 바로 마음이다. 성경은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라고 말한다(행 15:9).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다(렘 4:14).

믿음에 의하여 깨끗해진 마음은(벧전 1:22 참조) 지순한 대산(a pure object)께 고정된다. 그 마음은 순수한 샘(a pure fountain)으로부터 마시며, 순전한 율법(a pure law, 롬 7:22)을 즐거워하며, 순결한 구주(a pure saviour, 요일 3:3)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을 예견한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영적인 더러움 못지 않게 도덕적인 더러움도 혐오한다. 그렇다. 그것은 육체로 더럽혀진 의복을 싫어한다(유 23). 반대로 그 마음은 거룩하고, 사랑스럽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비록 현자라 할지라도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계 21:47)을 행한 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할 천국에 우리가 거하려면 마음의 청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마 좀 더 충분한 설명을 요구하리라.

믿음에 의한 마음의 청결은 첫째, 신적 빛의 조면에 의한 지식의 청결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식은 오류로부터 탈피하게 된다.

둘째는 신앙의 청결이며, 양심은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

세때는 의지의 겅결이며, 의지는 고집과 자기추구로부터 돌아서게 된다.

네째는 감정의 청결이다. 이제 감정은 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정화한다. 성경에 의하면 '마음'은 이 네 가지 기능 모두를 포함한다. 구속의 목적은 동일한 죄를 계속 짓지 못하도록 하려 함이라는 점에서 청결한 마음과 일치한다.

한편,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언제나 겸손한 마음에 의하여 입증된다. 신앙은 자신의 야비함, 덧없음, 그리고 무력함 등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영혼을 겸허하게 한다. 신앙은 과거의 죄악과 현재의 무가치성을 깨닫게 한다. 또 신앙은 영혼의 사악과 소욕, 그리고 육욕과 부패를 의식케 한다.

신앙만큼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것도 없고, 또 신앙만큼 인간을 겸허하게 하는 것도 없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현시하시기 위해 가장 적합한 도구로 선앙을 선택하셨는데, 그 이유는 신앙이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완전히 떠나 하나님께 가도록 작용하기 때문이다.

신앙은 우리가 단지 죄인 또는 가증한 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그로부터 모든 것을 받기 원하는 가난한 거지의 신분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만든다.

신앙은 자부심이 세고, 자신을 믿으며, 또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들며, 또한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강한 신앙은 언제나 최상의 겸손을 동반한다. 그리고 자신을 최고의 죄인으로 또 지극히 작은 호의도 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자로 인식케 한다.(마 8:8-10을 보라)

또한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부드러운 마음(a tender heart) 속에서 언제나 발견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세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거듭나지 못합 마음은 돌처럼 딱딱하고 교만하며 철면피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 전혀 무감동하며, 어떤 점에서는 자기 뜻과 자기만족을 전혀 억제하지 않은 채 마음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참된 그리슫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되어 "그가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는데 너떻게 내가 죄를 지을 수 있으랴"라고 말한다. 실수를 범하였을 때 강렬한 애통과 비통한 통곡을 발한다.

오, 나의 독자들이여, 당신은 범죄하여 그리스도를 근심시켰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깨어져 하나님 앞에 용해되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가? 아, 하나님의 자녀들과 공허한 신앙고백들을 구별짓는 것은 죄의 부재가 아니라 바로 죄에 대한 애통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