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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13]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13]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7. 10:56

제 1장 구원에 이르는 신앙(그 신앙의 난점 4)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발아하기 힘든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1) 자연인은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특성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기 때문에 사단이 제시하는 그 신앙의 그럴듯한 대조물들에 쉽게 속는다. 그 신앙에 대해 성경적인 가르침을 받았을 때조차도 부자 청년관원이 그리스도의 제자되는 죄건에 대해 들었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근심하면서 그리스도께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또는 자기들이 소유하지도 못한 신앙을 외식적으로 고백하거나 한다.

2) 이기심이 내부에서 그를 주관하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비중생인데게는 지나친 요구이다.

3)세상에 대한 애착심과 친구들을 의식하는 태도 들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하는 것을 방해한다.

4)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는 명령은 그들의 육체의 소욕을 거스린다.

5) 그리스도의 수치를 짊어지는 일, 세상으로부터 미움받는 일(요 15:18), 의를 위해 핍박받는 일 등은 단지 혈육만을 지닌 비중생인으로서는 몸이 움추러드는 일이다.

6) 상하지 않은 심령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비함과 자기의 모든 고집을 참회하는 일을 거부한다.

7)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딤전 6:12)과 사단을 이기는 일(요일 2:13)은 안일한 삶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너무 힘든 과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본존본능 때문에 지옥으로부터 구원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죄로부터 구원받으려고는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시실과는 달리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영접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삶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을 거절하ㅏ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죄인은 "그의 길을 버리지 않된다"(사 55:7). 그리고 우상으로부터 돌아서지 않고는(살전 1:9) 아무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다. 그래서 주 예수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눅 14:33)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은혜 찬미를 빙자하여 그리스도의 죄의 사역자로, 즉 그의 속죄 제사로써 육적이고 세상적인 정욕들을 습관적으로 즐기는 인간들의 사면을 획득하신 분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가공할 만한 일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동정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대속교리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또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한다고 공언을 하면, 그의 매일의 삶이 신앙고백을 전혀 하지 않는 불신자의 삶과 자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거의 모든 지역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마귀는 바로 이 착각작용을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마취시킨 후 지옥으로 보내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 6:46)고 말씀하시며 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다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신다.

우리 대부분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은 배우는 일이 아니라 안 배우는 일이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단의 달콤한 독약에 심하게 중독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체조직에서 그 독기운을 제거하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 독기운이 그들의 신체 조직에 퍼져 있는 한 그들의 지각은 흐리멍텅하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 글이 마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사역을 공공연히 공격한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또는 피조물에서 기원한 어떤 요소를 어린 양의 속죄제사에 첨가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친다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죄인들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임마누엘의 공로 외에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의(義)를 덧입혀 주시는가 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 대항하는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