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339] 본문
결론 5
끝으로, 왜 이 설교에 의하여 한 영혼도 거듭나지 않은 것인지(이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에 의하면) 더 엄숙한 또 다른 이유를 여전히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마태복음 5장으로부터 7장까지에서 우리가 가지는 바 확신, 말 그대로 세밀한 그림 같은 장면 묘사, 특유한 표현,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고를 자신에게서 떨쳐버릴 수 없다.♡
산 위에 앉으신 그리스도는 곧 심판의 보좌 위에 앉아 계신 그의 모습이었다. 제자들과 앞에 나아온 많은 '무리' 들에 둘러싸인 모습은 다가올 두려운 날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설교의 내용은 그때 행해질 진행의 절차와 판결이 내려지는 근거, 둘 다를 드러내 보여준다. 즉 "그의 백성" 은 축복의 말("복 받은 자" 라고 선언된다)에 의해 입증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저울에 달아져 이 설교에서 선언하신 바로 그 법칙의 평균치에 모자람이 드러난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감명의 효과는 이 때에나 그 때에나 서로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날에 그리스도의 나타난 형상이 아주 다를지라도, 비록 '그 눈이 불꽃 같고' 머리에는 '면류관' 을 쓴 모습으로 보여질지라도(계 19:12), 그러나 아무도 그러한 '놀라운' 광경에 의해 회개와 믿음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경시하고 거부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됨으로써, 그리고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는 그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무서움에 압도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광경과 말씀으로 인해 그 누구도 구원될 수는 없다.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분명히 놀라움 이상의 더 깊은 감명이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나, 그 감정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서기관들 사이에 가당치 않은 구별을 짓게 하였다.
서기관들은 주로 "사람의 유전" 내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 단지와 접시를 격식에 맞게 씻는 법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길게 논하며 강론해 온 자들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권위 있게 가르치신다 함은 예언서에 암시되어 있다. 곧 이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말씀을 그의 입에 두며,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명해진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 고하리라(신 18:18)고 하신 언약이 공표된 것이었다.
그의 적대자들조차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음은 놀랄 만한 일이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마 22:16).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낮고 비천한 상태에 있으시긴 했지만 그러나 가르치심이 결함 있게 여겨지는 것을 그냥 두지 않으셨으며 그에 대해 은혜로 응하셨다"(윌리엄 퍼킨스, 1590).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종들에게 한 모범을 남겨 두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사역자는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도록"(딛 2:15) 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오직 그가 말씀에 가까이 나아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함으로써만 할 수 있다.♡
끝으로, 우리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봄으로써 마무리짓고자 한다.
즉 마태복음 5장으로부터 7장까지의 '권세' 있는 말씀은 처음 그것을 들었던 사람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권면되고 있다!
이 가르침과 규칙에 따라서 우리의 행위가 인도되어져야만 한다. 그 약속과 격려에 의해서 우리의 영혼이 유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말씀을 척도로 우리는 심판의 날에 저울에 달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 설교가 팔레스타인에서 그것을 들었던 자들에게보다 더 큰 권위로서 다가올 수가 있다. 그의 뜻의 영원한 기록으로서 이 말씀을 성경에 기재하도록 성령으로 사도들을 감동시키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같은 사실에서 다음 권면이 주어지고 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히 12:25).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설교에 대해 '놀라움' 이상의 어떤 것이 있도록, 즉 이를 우리의 지성과 감정에 받아들여 매일 생활에 구현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자. ♡
Arthur W. Pink 산상수훈 p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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