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구원 34] 회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구원 (Doctrine of Salvation)

[영적인 구원 34] 회개

En Hakkore 2024. 4. 12. 11:19

9. 회개의 함축된 의미(4)

갈라디아서 3:10에서는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살후 1:7-9과 비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만일 율법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폐지되었다면, 온 세상은 그 저주로부터 자유로와 질 것이다. 왜냐하면 폐지된 율법은 의로운 자를 축복할 수도 없고 또한 사악한 자를 저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모시지 아니한 죄인들에게 그들이 처해 있는 무서운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느끼게 하기 위해 참된 각성을 일으켜 주실 때,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 아래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로마서 7:9-11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절실하게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율법이 폐지되었다면, 어떻게 성령께서 그 율법을 사용하실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지 못하고 확신을 받지 못한 자는 어떻게 되며, 계속하여 하나님의 요구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조롱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아, 그들은 다만 자신의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자신에게 쌓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롬 2:5)

세상의 통치자로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셨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것의 순수함을 나타내시고 그것의 훈계들에 복종하고 그것의 형벌을 견뎌내심으로써 그 율법을 크게 하셨다(사 42:21). 성령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율법의 거룩한 요구들을 주장하시고 인간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서 그것을 사용하심으로써 율법을 영광스럽게 하셨다(갈 3:24).

택함받은 각자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의 의미, 하나님의 율법의 공정함 그리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의 의로우심을 전달하는 것을 삼위일체의 제3위이신 성령의 특별한 은사이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로운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성향을 그들 속에 심어 주시고 율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심으로써 이 일을 행하신다(히 8:10).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본성이 되어서 그들은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비굴함)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된다"(눅 1:74,75). 이렇게 성자와 성령 두 분은 최고의 통치자이신 성부를 명예롭게 하시며 죄를 미워하고 죄인을 겸손케 하고 율법을 존귀하게 하고 은혜를 영광스럽게 하는 똑같은 계획에 참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 하나님의 통치상의 주권,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하나님의 의로우신 요구, 그의 모든 계명을 사랑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이 명령을 세상의 모든 거짓된 신앙은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밖에는 진리에 대한 부인, 진리의 곡해 전도, 뒤틀리고 혼합된 반쯤의 진리, 그리고 고귀한 은혜라는 허식 아래 선포된 불법이 있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교회 안에도 거짓된 신앙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허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의를 희생하고서가 아니라 "의로 말미암아"(롬 5:21) 왕노릇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한 은혜는 우리에게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라고"(딛 2:13) 가르친다. 이제 한쪽으로 치우쳐 가르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도록"(유 4) 하는 자들은 사단의 앞잡이, 곧 사단의 사역자들이다. 즉 "궤휼의 역군들"(고후 11:13)이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왜 그렇게도 참된 회개에 대한 설교가 거의 없는가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의 지고함에 대한 감각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요구는 무시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대한 변함없는 요구는 더 이상 인식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중생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지 못하며 오늘날의 설교 속에는 실제로 그들에게 그 전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모든 공상적 존경과 헌신은 단순히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며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만이(이것이 자기 보존의 자연적인 본능인데) 현대 '기독교'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중생하지 못한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 의무에 대해서 어떤 보답을 바라고 있으나 자신들의 죄가 지닌 악성에 대해서는 전혀 무감각하다. 그러므로 바로 이 때문에, 겸손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의 타락한 취향에 맟추기 위해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고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는 새 복음이 창안되고 '구원의 방법'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생겨난다.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