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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20] 헌신의 상징들(여호수아 5:1-15)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20] 헌신의 상징들(여호수아 5:1-15)

En Hakkore 2024. 4. 11. 12:04

앞의 강론들에서 우리는 여호수아의 영적 가치와 실질적인 적용이 그리스도인이 그의 기업을 현재에 소유하며 누리는 원리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믿음의 선한 싸움과 영적 전투를 성공적으로 싸우는 비결들이 거기서 제시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라는 사실을 상당히 강조한 바 있다.🫰

여호수아 1-4장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예증되고 예시되는 그 기본적인 원리들과 필수적인 비결들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 5장의 첫 두 단락을 마무리 짓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할례와 그리고 유월절을 지킨 일에서 두 가지가 더 제시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 부지런히 자기의 정욕들을 죽여가야 하며, 또한 육체와 세상과 마귀를 이길 힘을 얻기 위해서는 날마다 그리스도로(그는 제물이 되는 어린 양이시요 동시에 큰 제사장이시다) 양식을 취하는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

실질적으로, 가나안의 소산물은 우리의 기업의 일부분으로서 지금 현재 믿음으로 누리는 것이다.💕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는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수 5:12).

"이는 그 일이 우연히 혹은 눈이나 우박처럼 일반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적 지혜와 선하심의 특별한 지정하심으로 일어난 일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만나가 그들이 필요할 때에 베풀어졌듯이, 그들이 필요한 동안에는 계속 공급되었으나 그 후에는 더 이상 공급되지 않을 것이다"(헨리 Henry).

여기서 우리가 취해야 할 실질적인 교훈은 일상적인 방식으로 필요를 채울 수 있을 때에는 이적적인 방식으로 그것이 채워지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필요한 이적들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다.

참으로 귀한 사실은 이스라엘이 만나를 멸시할 때에도, 주께서는 만나를 공급하기를 그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민 11:6). 심지어 주께서 그 악한 세대와의 언약 관계를 끊으셨을 때조차도, 그는 그 만나를 공급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그 자녀들을 위하여 그 일을 계속하셨는데, 이제 그들이 성장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 여호수아서의 첫 주요 단원이 끝을 맺는다. 1:1부터 9절까지는 서론이며, 1:10부터 5:12까지는 요단 강을 건너는 일에 관한 내용이며, 5:13부터 12장까지는 가나안 정복에 관한 내용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수 5:13).

이 절에서 여호수아서의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는데도, "그리고" 라는 단어가 맨 앞에 붙어 있는데(개역개정에는 없음. 역주), 이는 이야기의 연속성을 보존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특별히 이 사건을 바로 앞의 사건과 연결 짓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그분을 높이는 자를 높이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할례를 베풂으로써, 또한 유월절과 무교절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높여드렸다. 그러니 이제 여호와께서 그분의 종에게 유별난 호의를 베푸시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받으셔야 마땅한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순종을 그에게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가 잃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주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그는 순종하는 여호수아에게 바로 이것을 그대로 시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혼에게 그 자신을 영적으로 나타내시는 역사를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놓쳐버리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아마도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공략할 최선의 계획을 수립할 생각으로 그 외곽을 둘러싼 성을 정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 일이 그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친히 그분의 백성을 위해 강하게 역사하시리라는 확고한 기대가 있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을 확신할 때 조차도, 우리는 이성적인 피조물들로서 모든 합당한 수단들을 사용해야 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 주실 것으로 여기고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을 핑계 삼아 우리의 할 일을 거부해버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주제 넘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곧 그가 친히 이적적으로 고기들을 가득 잡게 해 주실 것이면서도, 베드로에게 명하셨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