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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06] 헌신의 상징들(여호수아 5:1-15)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06] 헌신의 상징들(여호수아 5:1-15)

En Hakkore 2024. 4. 10. 11:3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갈갈이라 하느니라"(수 5:8-9).

이상하게도 주석가들은 "애굽의 수치"라는 표현의 의미에 대해 해석이 분분한데, 대다수는 그것을 이스라엘이 애굽인들의 종이었을 때에 받은 낙인(烙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수치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크신 권능으로 애굽에서 건지시고 홍해를 안전히 건너게 하시고 거기서 바로와 그의 군대를 궤멸시키셨을 때에 이미 영원히 사라졌다.

아니다. "애굽의 수치"란 오히려 출애굽기 32:12에 기록된 애굽의 조롱을 빗대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거부당하던 38년 동안에는 그들의 광야에서 멸망할 것이라는 애굽의 조롱이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심으로써 이제 그런 조롱의 근거가 사라졌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증표를 회복시키심으로써, 그들을 위한 여호와의 능력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으며 그들이 과연 그분의 백성이요 그가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이제 이 내용을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할 차례가 되었다. 구약 시대의 모든 의식과 제도들이 그렇듯, 할례 역시 신약 시대의 성도에게 실질적이며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우선 간단히 말하자면, 할례는 죄를 죽이는 일, 곧 육체의 더러움을 끊어 내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절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가볍게 생각하며, 로마 교회의 오류들로부터 물려 받은 그릇된 사고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죄를 죽이는 일"이 몇몇 특정한 죄의 행실들을 죽이는 것이나, 이런저런 구체적인 부패한 집들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몇몇 구체적인 죄의 행실들을 경계하고 단호히 배격하여 그것들을 이기는 정도로는 진짜 죄를 죽이는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그런 것들 중에 본성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실제로 그것들을 극복한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만 보아도 분명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에 대해 아무것도 마음으로 알지 못하는 많은 남녀들이 격하게 끊어오르는 분노를 잘 제어하기도 하고 과도한 음주벽을 이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도, 철저한 극기 훈련의 결과로 몇 가지 끈질기게 괴롭히는 죄를 극복하거나, 혹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가능케 하셔서 몇 가지 특정한 정욕거리를 이겨내기도 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악한 본성이, 그 뿌리가, 계속 흘러내리는 더러운 물의 샘이, 죄의 몸 전체가,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죄를 죽인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하고, 불쌍한 저 교황주의자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장대한 문제이다.

죄에 대해 죽는다는 것은 그저 몇 가지 죄의 행위들에서 구원받는 것보다 더 고상하고 거룩한 신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죄에 대한 죽으심에서 그와 하나가 되는 것에 있다(롬 6:10-11). 아멘!

그것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우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효과와 열매요, 이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근거하여 살며 그와 교제를 누리며, "그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의 머리이신 그분을 믿는 믿음이 발휘되면서,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의 덕과 효능을 우리 마음과 삶 속에서 실행하게 된다.

할례로써 그림자로 나타내었던 것, 즉 육체의 더러움을 벗어버리는 것의 골자를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며, 그들의 영혼 속에서 그것을(이 땅에서는 어느 정도로만,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실현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할례에 대한 완전한 견해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연합의 측면으로(feerally) 그리고 법적으로 보고, 그 다음으로 영적으로, 체험적으로 보고, 실현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보아야 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43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로마서 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