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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57] 성화의 조달자(1)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성화론 57] 성화의 조달자(1)

En Hakkore 2024. 4. 3. 10:45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고린도전서 1:30의 문맥에서 보라 - 17,18,23절)는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우리에게 네 가지 것이 되셨다. 이것은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를 삼으신 것이다(고후 5:21). 즉 객관적으로 그리고 전가됨으로서 그렇게 된 것이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객관적으로 지혜가 되셨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고가 다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게도 지혜롭지 못하다(고전 8:2을 보라). 그러나 우리에게서 요구하는 하나님의 모든 지혜는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잠언서의 지혜처럼 그는 우리의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객관적으로 의로움이 되셨다.

그는  그 자신이 우리의 의이시다(렘 23:6). 그러므로 신자는 선언하기를 주 안에서 나는 의롭고 강하다(사 45:24)고 외치는 것이다. 율법이 우리를 대적하는 목소리를 내지만 나는 나를 대신하여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순종에 의해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신 그리스도의 의에게로 나아간다.

셋째는 그리스도가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거룩함이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절대적인 순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공로의 영향과 효력이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있던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이스라엘이 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림 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어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리에 나아갈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의 피의 무한한 가치가 더욱 우리를 거룩케 하여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지 않겠는가! 이 거룩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가진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붙드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것이 된 것이다.

넷째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객관적으로 구속함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 안에서 우리의 구속주이시요 구속함이시다. 그 안에서 우리가 구속함을 가지고 있다(엡 1:7).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구속함이 되심은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들을 구속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직접 값을 지불함으로 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1:30절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다는 것을 확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그 보증자(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것으로 받아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서 있는(그리스도와 함께 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억만가지 사실들이 우리를 유죄로 판결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저주스럽게도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였다는 죄목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답변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혜라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의로움은 더러운 넝마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답변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라는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것을 행하였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아가기에 합당치 못한 실수 연발을 행한 자들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답변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육체에 예속된 자들이라는 판결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답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함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0절은 한 단위이다(a unit). 우리는 지혜와 거룩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일하시는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의와 구속함 역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져다 주신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다 객관적이거나 아니면 주관적인 것들이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우리에게 거룩함(성화)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그가 우리의 의요 구속함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의와 구속함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설명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핫지 박사는 질색하며 부인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되신 의는 분명 그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의가 아니다(로마교주의자 이단들). 그러나 그 의는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거룩함이 되셨다는 것도 같은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라든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거룩함이 되게 하셨는데 그리스도의 제물의 무한한 순결함과 탁월함을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 그렇게 하셨다. 우리는 우리가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말미암아(벧전 2:9)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나아오기 전에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하나님께 가까워 졌다(엡 2:13).

전자는 후자의 필연적인 기초이다. 기름이 상징하는 것이 이젠 피의 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되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고전 1:2). 정말 다른 점은 이것이다.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것인데 보다 고상한 생명의 옹호자 혹은 승리한 생명이 청중들과 독자들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든지 혹은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기꺼이 하실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케 함을 받은 자라는 사실이다. 이것에 대한 나의 무지가 그 복된 사실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사실에 대한 명확한 이해 부족이나 그것을 확고히 부여잡는 믿음의 연약함이라고 해서 그 사실을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이든지 혹은 경험하는 것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셨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Arthur W. Pink 성화론 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