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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32] 성장의 성격 본문
4. 영적인 성장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담대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2)
믿음의 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역사하는 믿음으로 시작된다.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서 그로부터 모든 쓸 것을 공급받는다. 믿음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그를 신뢰함으로써,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를 온전히 의지함으로써 시작되며, 계속적으로 그를 바라고 그를 신뢰해야 한다.♡
믿음은 지혜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께 간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가 하나님에 관해서, 우리 자신에 관해서 구원과 기타 여러 가지 의무에 관해서 계시하신 모든 것을 능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은 그의 명령을 지키고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특이하게, 믿음은 그의 명령을 합당하게 잘 지킬 수 있도록 능력을 달라고 그리스도께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는 의가 없음같이 능력 또한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전자를 위해서 그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같이, 후자도 위해서도 온전히 그에게 의지해야 한다. 전자 후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 점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피조물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높이 받든다는 미명하에, 그들은 이 점에 있어 아주 무력한 존재라는 사상에 사로잡혀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믿음을 주신 자인 것 같이, 오직 하나님만이 그것을 담대하게 하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그가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그의 뜻에 온유하게 순종하고, 혹은 그가 금지하시면 그 뜻에도 온유하게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는 어떤가? 그들의 믿음은 조금도 자라나지 않고 대부분 지상생활에는 회의와 불신, 두려움과 좌절 가운데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더 나쁜 것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부족한 것에 대해 조금도 죄책감이나 견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뻔뻔스럽게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주권에 돌린다.
이런 사람들이 어떤 술주정뱅이에게 좀 자제하라고 책망한다면, 그들은 그 술주정뱅이가 다음과같이 말할 때 당연히 아연실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갈증을 참을 수 있는 은혜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불신앙으로 인해 책망받으면 그것이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더 큰 믿음의 분량을 주시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사악하고 못되먹은 말인가! 이 얼마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진리를 왜곡시킨 악담인가? 이러한 비난은 당연히 그들이 받아야 한다. 그들은 그것을 솔직이 시인하고 주 앞에 나와 통회자복해야 할 것이다.
확실히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는 자일 뿐만 아니라 믿음을 성장시키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전연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내 믿음이 약화되고 부족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더 많은 것을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주신 것을 내 죄로 인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진지하게 간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 눅 17:5), 주께서 믿음을 성장시키도록 정하여 놓으신 수단들을 사용하는 데 게을렀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폭풍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주님을 흔들어 깨우며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라고 간구했을 때, 주님은 그들이 믿음 없는 것을 책망하셨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8:26).
이것은 그들의 믿음의 믿음의 분량과 담력에 관해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망상을 통렬히 꾸짖으신 것이다. 주님은 또 다른 사건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미련하고 ... 마음에 더디 믿는 자여"(눅 24:25)라고 책망하셨다. 이것은 분명히 그들의 믿음 없음에 대해 책망하신 말씀이며, 불신앙을 일러 주신 말씀이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시키고 완전 충족자로 그를 신뢰한다면, 그리스도는 나의 것이 된다. 그가 하나님 말씀의 무오한 권위로 나를 두르심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가 나의 것이면, 증가 시킬 수 있는 권리와 의무와 특권을 갖는다.
우리는 "시시(詩詩)로 저를 의지하고"(시 62:8),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에게 알리고, 또 그를 가장 후히 주시는 분으로 생각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족함을 사용하고, 그와 함께 생활하고,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며(요 1:16)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받기 위해 그의 충만하심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들을 주지하여, 전자는 우리의 행동을 지도하고 후자는 우리의 영혼을 붙들도록 할 수 있는 의무와 특권을 갖는다. 믿음의 하는 일은 전자로부터는 힘을 얻게 하고, 후자로부터는 위안을 얻게 해준다. 그의 좋으신 말씀을 보자.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우리는 그의 거룩한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믿음을 화합'시킬 수 있는 특권과 의무가 있다. 우리가 그렇게 행함에 따라 "양육을 받게"(딤전 4:6) 될 것이며, 믿음은 자라나고 풍성해지며 견고해질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내가 봄으로써 행한다면, 내 부패한 심성을 갖고도 항상 그분 뵙기를 원한다면, 나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퇴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림으로써 그가 날 위해 남겨 놓으신 모본을 수행하기를 진지하게 간구하기보다, 내적으로 위안 얻는 데 더 급급하다면, 성령은 근심하실 것이며 그리스도의 것들을 나타내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나의 고난의 어두침침한 렌즈를 통해 보려 한다면, 실패는 기정된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불빛 속에서 나의 고난을 보려 한다면, 승리는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만일 내가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주님에게서 눈을 돌려 내 환경의 바람과 파도를 바라본다면, 옛날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가라앉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내 마음 속에 불신앙이 작동함으로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그리스도께 부르짖기를 매일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면, 확실히 믿음은 떨어질 것이며 그에 대한 잘못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만일 내가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딤전 4:6)으로 양육받기를 게을리한다면 내 믿음은 반드시 약화되며 내리막 길을 걷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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