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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5] 성장의 필요성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5] 성장의 필요성

En Hakkore 2024. 4. 1. 11:27

성장의 필요성 6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성장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명시하기 전에, 다시 한번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의미, 즉 '기름부음받은 자'와 '그리스도의 제자'에 대해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 앞에 있는 주제에 주요한 원리를 제공한다.

'기름 부으심'은 성령으로 말미암았으며 하나님의 사역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피동적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 함은 그 자신의 자의적인 행위이며 그렇게 함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것을 명심함으로 우리는 한편으로 치우치는 우를 범치 않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신적인 행위와 인간적인 행위를 가리킴과같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에서도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와 인간 의무의 수행에 대한 문제를 잘 숙지하게 될 것이다.

한 각도에서 보면 성장이란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필요하며 바람직하다. 우리는 두 각도에서 바라봄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되며, 의무수행을 잘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지적한 이 진리의 양면성에 대해 성경 구절 하나를 살펴봄으로써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시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첫째, 이것은 인간이 타락하여 마음이 삐뚤어 어리석은 길로 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의 본래적인 상태이다. 둘째, 이것은 주의 백성들이 고통스런 상태를 만났으나 여기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중생자들이 체험하는 바이다.

셋째, 이것은 겸손하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능력을 얻기 위해 '가르쳐 달라'고 간구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것은 '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는 기도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혜의 마음을 얻어서" 지혜로운 자녀들과같이 우리의 책임과 의무를 잘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기로는 한 사람이 '마음을 얻는다'함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다 어떤 일을 집중함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손을 쓴다' 함은 자기의 직책을 성실하게 감당하기 위해 일을 착수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들 두 경우에는 뜻하는 바가 있다.

전자는 그가 건전한 마음을 가졌다 함이요, 후자는 그가 건강한 육체를 가졌다 함이다. 이들 두 경우에 관련하여 이것을 보편적으로 전자는 그의 마음을 사용하는 것으로, 후자는 육체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마찬가지로, '지혜의 마음을 얻는다' 함은 부지런히,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지혜를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주어진 길을 행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중생시에 '새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이것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로 살리셨다면 우리는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셨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라나야 한다.♡

"은혜, 성화, 그리고 거룩함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을 뿐 아니라 그것을 증가시키고 수행하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개념적으로 그러할 뿐만 아니라 은혜의 모든 행위도 성령의 즉각적인 결과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하여 이러한 것으로 인해 고통당하며, 은혜와 거룩함으로 자라나기 위해 애를 써야만 하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과 그의 유효한 역사가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수고, 우리의 의무, 우리의 순종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John Owen)

대답은 간단하다. 1) 우리는 매순간 이 문제에 봉착할 것을 예상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인간의 순종 사이에 어떤 일관성이 있음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성경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음을, 그리고 진실한 신자들의 체험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음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세속적인 소욕에 사로잡혀 그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2) 이 문제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말을 들어 보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3,4).

생명과 거룩함에 속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신의 성품을 부여받으며 그 효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부패한 속성이 죽는다면, 우리 자신의 노력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성화의 전 과정의 역사가 우리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에게만 돌려진다면, 우리는 해이한 마음 가운데 태만해도 좋단 말인가.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는 그런 식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을 사려깊게 생각함으로 우리 안에 거룩함이 더욱 증진되도록 부지런히 힘써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곧 바로 다음과같이 말한다. "이러므로(헬라어 의미로는 '우리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인하여'임)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5,6)

이러한 난제들과 베드로의 말은 그 폭에 있어 다양하다. 이 난제들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것이지만 베드로는 우리가 부지런히 순종해야 할 동지와 용기를 북돋아 준다.

3) 이것은 깊이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과 은혜를 공급받기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를 사모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행하는 선행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태만과 죄로 인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함으로써 그의 도우심을 멈추지 않게 해야겠다. 우리 자신의 힘과 상태로써는 영적인 선을 행할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자신의 힘으로써는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