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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76] 성화의 보증자(완결편)

En Hakkore 2024. 3. 28. 11:27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일에 있어서 그 사역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더 살펴보기 전에 우리의 심령이 앞 장들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사실들을 굳게 붙들고 거기에 뿌리를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지하고자 한다.

신자는 성부 하나님의 칙령과 목적하심 안에서 이미 완전히 거룩케 된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이 위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기에 능히 합당한 존재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보시고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을 타당한 자로 간주하시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는 순간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케 된다. 따라서 그의 지위와 상태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것이다. 더 나아가 성령의 내주하심과 그의 몸을 성전이 되게 하심은 성도를 개인적으로 거룩한 자로 만드신다.

이것은 성막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가나안을 거룩한 땅으로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성으로 만든 것과 같다.

이 점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은 명확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거룩한 행동들을 함으로써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오류이다. 아니다. 우리는 거룩한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거룩한 자가 되어야만 한다.

마치 샘을 흘러 내보내기 전에 먼저 깨끗해야만 하듯이 말이다. 만약 열매가 좋으려면 나무 자체가 좋아야 한다. 성경의 순서는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엡 5:3), 그리고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행실이 거룩하며"(딛 2:3)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섬김에 간여하라고 명령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심령을 평온케 하신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어 사랑할 수 있게 하신다.♡ 그는 우리 안에 거룩케 된 특성을 창조하시어 거룩케 된 행동을 낳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피 뿌림을 얻어서 지성소에 들어갈 흠 없는 자로 세우시어 죽은 행실에서 깨끗케 된 자로 나오게 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게 하신다.

우리 안에 거룩한 성향을 만드시는 문제를 이제 생각하려고 한다. 원리나 행동에 있어서 거룩한 무엇이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서 혹은 인간이 행하는 것들에서 나오는 것들보다 우월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빛과 유사한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도 아니며 이교도 철학자들이 즐겨 수행하는 도덕적 가치를 따라 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고도의 수행을 할지라도 그 안에서 거룩을 찾을 수 없다. 도리어 시기와 교만과 복수심 등이 더 고조됨을 발견할 뿐이다. 그렇다고 거룩은 하나님의 율법에 외형적으로 순응하는 것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다. 삶과 삶의 방식의 외적 개혁이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외적 개혁은 바리새인들에게서 찾아진 것들이다. 그들의 눈에 순결하고 그들의 행동들은 다른 이들보다 순결하고 거룩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렇지 못한 자들을 그들은 경멸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심령은 불결한 것들로 넘쳐났다.

'그렇다고 거룩이 소위 절제하는 은혜는 아니다. 사람은 부모나 스승의 개입에 의해서 절제될 수 있다. 또 시민법에 의해서 제지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삶의 엄청난 죄악들로부터 억제된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보존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거룩케 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거룩은 일반 혹은 특별 은사들이 아니다. 가룟 유다 역시 설교자로서 가지는 일반적인 은사를 가졌었고 사도로서 특별 은총도 소유했었다. 그러나 그는 거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은사들은 은혜가 아니다. 한 사람이 모든 은사들과 모든 지식을 가질 수 있고 사람의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어도 은혜를 가지지 못할 수 있다.

거룩케 되지 못한 심령이면서도 은사의 혀를 가질 수 있다. 성화는 아담의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거나 혹은 죄로 인하여 엄청 손상된 그 형상을 수선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낡은 것을 가리기 위한 새 헝겊조각이 아니다'(존 Gill).

Arthur W. Pink 성화론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