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창세기 강해 107] 두 아들을 축복하는 이삭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07] 두 아들을 축복하는 이삭

En Hakkore 2024. 3. 20. 11:52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11, 12절).

여기에서 야곱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매우 영리할 뿐만 아니라 장차 벌어질 일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 가운데 죄로부터 움츠리는 대신 예상되는 좋지 않은 결과에만 온통 마음을 쏟는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13-17절).

야곱과 리브가 가운데 누가 더 비난을 받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리브가는 두 아들과 관련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그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호와를 아는 여인이었다.

창세기 25:22은 그녀가 "여호와께 물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명백했다. 그녀는 이삭의 육신적인 계획이 무위(無爲)로 돌아가도록 여호와께 맡겼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육체의 방법을 붙잡았다. 그녀의 거짓된 방법을 동원하면서 자기 아들에게 아버지를 속이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리브가를 비난함에 있어 우리는 로마서 2:1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창세기의 이어지는 구절을 계속 인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야곱은 어머니의 제안을 따르면서, 죄에다가 죄를 더한다. 먼저 그는 스스로를 형으로 위장하면서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심지어 거짓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대기까지 한다.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20절). 잘못 내디딘 첫 발걸음은 계속해서 우리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와 비슷한 진행 과정이 시편 1:1에 암시적으로 나타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라 행하지(walk)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stand)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sit) 아니하고." 악인들의 꾀를 따라 "행하는" 자는 곧 죄인들의 길에 "서게" 될 것이며, 머지않아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될 것이다.

처음에 다소 의심을 품었던 이삭은 야곱의 거짓말에 속아 모든 의심을 품고 야곱을 축복한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7-29절).

여기에서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입술로부터 받은 "축복"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 앞에 온전히 엎드렸을 때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직접 받은 복된 약속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창 28:13-15을 보라).

계속해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주목하라. 야곱이 아버지의 면전으로부터 나오자, 곧바로 에서가 별미를 가지고 와서 말한다.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31절). 그제야 비로소 이삭은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닫고 "심히 크게 떨었다"(33절).

에서는 야곱이 행한 일을 알고 소리 내어 울면서 아버지에게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라고 부르짖는다(34절). 그러나 이삭은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았았도다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웠노라" 라고 대답한다(35, 37절).

이에 에서는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라고 부르짖으면서 다시 간청한다(38절). 이에 이삭은 이후 역사(歷史)속에서 놀랍게 성취된 다음과 같은 예언을 말한다.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39, 40절). "에서가 그의 아우를 섬길" 것을 위해서는 사무엘하 8:14을 보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주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다윗은 야곱의 자손이었다). 또 "그 멍에를 그의 목에서 떨쳐버릴" 것을 위해서는 대하 21:8을 보라.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우므로."

앞에서 우리는 에서 대신 야곱을 축복했음을 때달았을 때 이삭이 "심히 크게 떤" 것을 주목했다. 바로 이것이 전체 사건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위로 한 줄기 빛이 비췬다. 이삭은 지금까지 자신이 여호와의 명백한 뜻을 거슬러 왔음을 깨닫고 심히 두려워 떨었다.

야곱이 두려워 했던 것과는 달리, 이삭은 야곱을 "저주"하지 않았다(12절을 참조하라). 도리어 이삭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백한 뜻을 거슬렸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심히 크게 떨었다."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라는 표현 속에 우리는 그의 믿음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다(33절).

그는 하나님이 오래 전에 말씀하셨던 것이 지금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유효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성령께서 히브리서 11:20에서 붙잡으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여기의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몇 가지만 나열해 보도록 하자.♡

1.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의 에서처럼 신적 특권을 육신을 만족시키는 것과 바꾸는가?

2.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을 조심하라. 오늘날 선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악한 방법도 불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스스로를 수치와 슬픔으로 몰아가는 것일 뿐이다. 여기의 리브가와 야곱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3. 하나님의 계시된 뜻보다 인간적인 감정을 앞세우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항상 은혜를 구하라.

4. 심음과 거둠의 법칙을 기억하라. 사랑하는 아들을 멀리 떠나보낸 것은 이삭이 아니라 리브가였음을 주목하라. 야곱을 끔찍한 죄로 이끈 것은 그녀였다. 마찬가지로 야곱이 오랫동안 집을 떠나는 일에 도구가 된 것 역시 그녀였다. 그녀는 야곱에게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몇 날 동안" 피해 있으라고 말했다(44절).

그때 그녀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거기에서 20년 동안이나 머물게 될 줄은 그리고 다시는 그 아들을 볼 수 없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모든 것을 "확실하게" 간다. 외삼촌 집에 머무는 20년 동안, 야곱은 여러 차례 라반에게 속임을 당한다. 자신이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것과 똑같이 되었다.

5. 하나님의 게획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으라.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이삭은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의 아름다운 그림이 언뜻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야곱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아들여져 축복을 받은 것은 그가 아버지위 사랑하는 장자(에서)의 이름 뒤에 숨고 또 그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장자(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뒤에 숨고 그의 의의 옷을 입음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져 그의 복에 참여하게 된다.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