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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06] 두 아들을 축복하는 이삭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06] 두 아들을 축복하는 이삭

En Hakkore 2024. 3. 20. 11:52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31절).

여기에서 야곱은 본래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을 에서로부터 사고자 한다. 그것은 "장자의 명분" 혹은 "장자권" 이었다. 장자권은 당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진 소유였다. 거기에는 존귀와 권세가 부여되었으며, 그것을 가진 자는 통상적으로 갑절의 분깃을 받았다(창 49:3과 신 2 1:17을 보라).

아브라함의 가정을 생각해 보라. 그 가정의 장자권에는 특별한 축복이 덧붙여져 있었다. 거기에는 일시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영적인 축복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마이어(F. B. Meyer)는 이렇게 말한다.

"장자권은 영적인 기업(基業)이었다. 그것은 가족이나 혹은 가문의 제사장이 되는 권리를 부여했다. 또 거기에는 신적 비밀을 소유하며 전달하는 특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메시야의 혈통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했다."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참된 성격을 드러낸다(32절). 이러한 말은 그가 "아브라함의 축복"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어투로 "이 장자의 명분" 이라고 말한다.

나는 또한 에서의 그와 같은 말이 히브리서 12:16의 성령의 말씀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

다시 말해서 그와 같은 에서의 말은 "망령된"(profane), 즉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말이었다. 에서가 실제로 의미한 것은 당장 죽을 먹지 못하면 굶주림으로 죽을 것이라는 것이 아니였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 집의 있는 모든 양식을 자기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가 실제로 의미한 것은 배고파 죽게 된 마당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신 약속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약속 따위를 먹고 살 수 없다. 내일 죽을 것이니 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달라" - 바로 이것이 에서가 말한 것의 진짜 의미였다.

다음으로 에서가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 26장 끝 부분이다. 거기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34, 35절).

이와 관련하여 그랜트(Grant)의 글을 인용해 보도록 하자. "이것은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 정도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망령된 태도의 자연적인 귀결이었다. 그는 지금 40세였다. 그러한 40년은 그의 시험 기간이 끝났음을 암시한다.

한꺼번에 두 명의 가나안 여자들과 혼인함으로써, 그는 한편으로 아버지의 모범과 훈계를 거역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마침내 우리는 창세기 27장의 슬픈 장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1-4절).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기 전에 그로부터 별미를 갈망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창세기 25:28이 대답해 준다. "이삭이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이러한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이삭은 에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불붙이고 그럼으로써 그를 전심(全心)으로 축복하고자 그렇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삭의 눈은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여기의 말씀이 에서가 두 명의 가나안 여자들과 혼인했다는 기록 바로 다음에 나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삭은 에서를 지나치게 편애하는 가운데 그가 여호와의 영광을 모독한 것을 너무나 가볍게 다루었다.

더구나 에서를 편애한 이유가 고작 그가 사냥한 고기 때문이었다니! 아, 육체(Flesh, 혹은 "고기")를 향한 인간의 소욕은 얼마나 강렬한가!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이삭이 에서를 편애한 것이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하셨던 말씀 즉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송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히브리서 11:20을 로마서 10:7과 비교할 때, 이삭은 분명히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때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17:5-10)

전에 사라는 육체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자 했다.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창 16:2). 그러나 리브가 역시도 여기에서 시어머니 사라의 악을 똑같이 되풀이한다.

어떤 설교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잘못된 격언 위에서 행동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종말(end)에 이른 자를 돕는다.

리브가가 정말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면, 그녀는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면서 조용히 아내의 의무를 이행했을 것이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55

■ 히브리서 11장 20절.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로마서 10장 7절.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