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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03] 이삭의 생애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03] 이삭의 생애

En Hakkore 2024. 3. 19. 11:04

우리는 라해로이 우물가에 있는 이삭을 보았다. 그는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었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분 자신의 경험이 가르쳐 주지 않는가?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창 26:1). 이삭이 라해로이 우물로부터 그랄로 간 것은 아들(신자)이 하나님의 임재와 신적 교제의 달콤함을 계속 유지하는데 실패한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2, 3절).

이삭은 지금, 예전에 기근이  임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의 발걸음을 붙들지 않으셨다면, 틀림없이 그는 그곳으로 갔을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의 한 두드러진 실례(實例)를 보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을 붙드셨다. 그러나 예전에 여기와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26:6).

그랄은 가나안과 애굽 중간에 있는 도시였다. 하나님은 그곳에 "거루"(sojourn)하라고 말씀하셨다(3절). 그러나 이삭은 거기에 "거주"(dweii)했다(6절). 그것도 "오랫동안" 말이다(8절). 이제 이삭이 그랄에 오랫동안 정착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주목하라.

그는 거기에서 범죄했다.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7절). 이와 같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죄를 똑같이 반복했다(창 20:1, 2).

아버지의 잘못된 본을 따르는 이삭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첫째로, 여기의 사건은 우리에게 자녀들에게 있어 부모의 덕을 본받는 것보다 도리어 부모의 악과 연약함을 흉내 내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부모의 죄는 자녀들 안에서 너무나 자주 반복되고 영속화된다.

둘째로, 또 여기의 사건은 우리에게 두 사람이 기질적으로 매우 다른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유혹에 굴복한 사실을 보여 준다. 기근이 일어났을 때, 두 사람 모두 도움을 위해 사람들에게로 피했다. 아비멜렉의 땅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아내를 사실 그대로 말하기를 두려워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사람의 기질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지켜주지 않을 때 여지없이 넘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지 않은가! 아,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경고가 되는가? 💕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26:12, 13).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여기에서 이삭이 하나님과의 교제 밖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형통하게 된 것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3절의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목한다면, 그러한 어려움은 곧 사라진다. 그것은 이삭이 아비멜렉을 속이기 전에 주어진 약속이었다.

이것이 참된 해석이라는 것은 "복"이라는 단어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3절에서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12절은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여 준다 -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와 그것이 성취된 때 사이에 행한 이삭의 잘못은 단지 우리에게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라는 복된 말씀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는 한 가지 두드러진 실례일 뿐이다(히 10:23). 그렇다. 하나님이 미쁘심을 송축하자!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창 26:16).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우리를 떠나라"고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비멜렉을 통해 이삭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17-18절).

블레셋 사람들이 메웠던 우물들을 다시 파는 것에서, 이삭은 신약 시대의 여명과 함께 바리새인들의 유전과 의식주의(儀式主義)에 의해 사실상 메워져 있었던 생명수 샘을 다시 여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19-22절).

이러한 "다툼"은 자기 자녀를 다시금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이었다. 또 우리는 여기에서 악에 대해 대항하지 않는 이삭의 아름다운 도덕적 성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판 우물들을 위해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다른 장소로 조용히 "옮겼다."

여기서도 그는 우리 앞에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따를 모범을 제시한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19, 20).

여기에 나타난 이삭의 태도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신" 우리구주의 모습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벧전 2:23).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