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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02] 이삭의 생애(창세기 26장)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02] 이삭의 생애(창세기 26장)

En Hakkore 2024. 3. 19. 11:03

오늘 우리는 이삭의 생애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삭은 네 명의 위대한 족장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에 대한 기록은 다른 족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위해서는 열두 장이 할당되었으며, 야곱과 요셉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반면 이삭의 생애는 여기저기에서 한두 마디 언급될 것을 제외하면 오직 한 장에 응축되어 있다. 이삭의 성격을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인 야곱의 성격과 비교할 때, 우리는 이삭에게 아브라함에게서 나타나는 믿음의 승리와 야곱에게서 나타나는 허물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삭은 아들됨(sonship)을 상징한다. 그가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이어받는 상속자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엘르아살은 브두엘에게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라고 말했다(창 24:36).

이것이 창세기 25:5에서 다시금 반복되는 것을 주목하라.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이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더 큰 아브라함의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신 것을 가르킨다(히 1:2).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과 하나님이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사실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롬 8:17). 이것은 이삭에게 사실이었던 것처럼, 또한 우리에게도 사실이다.♡

아버지 집의 모든 소유가 우리의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단지 신자의 아들됨(sonship)과 상속자됨(heriship)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하늘의 부르심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 독자들이 잘 아는 것처럼, 가나안 땅은 우리의 시민권이 있는 하늘(빌 3:20)과 우리의 영적 싸움(엡 6:12)을 상징했다.

족장들 가운데 평생 가나안 밖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은 오직 이삭뿐이었다. 아브라함은 잠시 동안 그 땅을 떠났었으며, 야곱과 요셉은 그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갔다가 결국 애굽에서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징적인 측면에서 이삭을 살펴보았는데, 이제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창세기 22장의 장면에 이어 우리가 그에 대해 처음 읽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그 때에 이삭이 라해로니 우물(well Lahairoi, 한글개혁 개정판에는 "브헬라해로이" 라고 되어 있음)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혹은 기도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24:62, 63).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이삭의 성격과 관련한 좋은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그는 조용하며 차분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적극적이며, 행동적이며, 공격적인 기질을 이어받지 않았다. 그는 조용하며, 온유하며, 다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우물의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이 제단의 사람이며 야곱이 장막의 사람이었다면, 이삭에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우물"이었다. 창세기 22장에 기록된 사건 이후 이삭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이삭이 라해로이 우물에서 왔으니" 라는 말씀이다(24:62).

앞의 글에서 우리는 창세기 22장의 사건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 사건 이후 첫 번째 언급이 그와 같은 승천에 이어 성령의 역사(役事)의 상징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우물의 상징으로 다시 돌아오자.

또 다시 다음으로 우리가 그에 대해 듣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라해로이 우물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라는 말씀이다(25:11).

또 다시 우리는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매웠음이라" 라는 말씀을 읽는다(26:17, 18). 계속해서 창세기 26:20, 21, 22, 25절을 읽어보라.

이삭의 이름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일곱 번 "우물"과 연관되는 것은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매우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우물은 저수지와 다르다. 우물은 물이 솟아오르는 장소인 반면, 저수지는 단지 물이 모여 있는 장소일 뿐이다. 이삭의 우물의 상징적인 의미는 창세기 26:19에서 발견된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springing water, 즉 솟아오르는 물) 근원을 얻었더니."

물은 자연적인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하다. 또한 그것은 영적인 생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자에게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생수" 즉 말씀을 통해 역사(役事)하는 성령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랜트(F. W.Grant)는 이렇게 말한다.

"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자라게 하는 방식은 성령이 역사(役事)하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물이 없다면 식물은 양분이 뿌리에 직접적으로 접촉되어 죽게 된다. 물의 역할은 앙분이 유기체에 흡수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은 유기체에게 양분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이삭이 등장하는 첫 번째 우물은 라해로이 우물이었다(24:62, 25:11). 라해로이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창 16:14을 보라). 그것은 항상 살아 계시며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끊임없는 돌보심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그러한 우물은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는가? 바로 성경이다. 성령에 의해 조명(照明)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계시한다. 이와 같이 "우물"은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는 장소를 상징한다. 💕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것은 실제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며 순종하는 것에 달려 있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