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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50] 방주의 모형론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50] 방주의 모형론

En Hakkore 2024. 3. 16. 10:27

5. 하나님은 사람들을 이러한 방주 안으로 오라고 초청하셨다.

노아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직접 초청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오라"(창 7:1, 한글개역개정판에는 "방주로 들어가라"라고 되어 있음). 바로 여기가 성경에서 "오라"(come)는 단어가 처음 나타나는 장소이다.

그리고 이후 그 단어는 500회 이상 나타난다. 그 단어가 여기에서 처음 나타나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는가? 여기에는 참으로 풍성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은 "방주 안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방주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가라"(go)는 명령이지만, "오라"(come)는 은혜로운 초청이다.♡

"가라"는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함축하지만, "오라"는 방주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실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우리가 복음 안에서 발견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이 아닌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계속해서 그러한 초청이 개인적인 초청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 "너는 방주로 오라." 하나님은 항상 가인의 마음과 양심에 호소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청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 "네 온 집은 방주로 오라." 우리는 오늘날의 은혜의 복음에서도 이와 병행되는 것을 발견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6. 방주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였다.

이러한 사실은 몇 가지 세부적인 것들로부터 나타난다.

첫째로, 방주는 "그 안팎을 역청으로" 칠했다(6:!4). 그리하여 방주는 전혀 물이 새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피난처였다. 아무리 폭우가 쏟아지고 물결이 높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방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안전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방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의 모형이었다.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 마치 노아가 방주 안에 감추어진 것처럼"(골 3:3). 다음으로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간 직후, 우리는 그와 관련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라고 되어 있음).

이것은 얼마나 복된 말씀인가! 노아는 자신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방주 안에서 그를 보존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이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에게 피한 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벧전 1:5). 마지막으로, 방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안전은 일 년 후 그들 모두가 새 땅에 완전하게 도착한 사실 가운데 나타난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8:18, 19). 방주 안으로 들어간 모든 것이 보존되었으며 홍수로 인해 죽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 18:9)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일깨워 주지 않는가?

7. 방주에는 오직 하나의 문이 있었을 뿐이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위한 문이 따로 있고, 동물들을 위한 문이 따로 있고, 새들을 위한 문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문이 전부였다. 이것은 나중에 성막에서도 사실이었다. 성막 역시도 오직 하나의 문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의 영적 의미는 명백하다.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다. 장차 임할 진노로부터 피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다. 불못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줄 오직 한 분의 구주가 계신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요한복음 10:9에서 우리 주님은 여기의 모형의 언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신다.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노아에게 문을 "옆으로" 내라고 명령하셨는데(6:16), 여기에도 역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분명 이것은 우리 주님의 옆구리가 창에 찔리는 것을 가리킨다(요 19:34). 그리고 그것은 이제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심장으로 가는 길이 열렸음을 암시한다.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