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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60 빌라도 앞에서의 그리스도 1 본문
빌라도 앞에서의 그리스도2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러나” 라는 말은 불길한 징조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당혹스러운 침묵이다.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빌라도의 질문에 대답하셨었다. 그런데 이제는 답변하기를 거절하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침묵에 대해서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잘 숙고해 보면 그가 그 외에 달리 행동하실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째로, 우리는 19:11에서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사실은 여기 19:9에서의 그의 침묵이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시려고 의도적으로 결정하신 데에서 나온 침묵이 아님을 보여 준다.
“우리들에 관한 한, 우리가 참을성 있게 침묵을 지키려면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는 좀 더 선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우리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견딜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침묵에 적합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신을 가다듬기에는 내면적으로 너무 큰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지극히 심원하신 인간성에 있어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초월하는 고귀함이 있으셨다♥ 그가 십자가 상에서 말씀하신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의 입술은 하나님의 말씀을 못하도록 속박된 것은 없다”(Stier).
둘째로, 그리스도의 이 침묵은 빌라도가 어떤 심정으로 그 질문을 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진실하게 빛을 찾는 열렬한 영혼의 외침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외침에 결코 문을 닫으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셋째로, 빌라도는 대답을 들을 자격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무죄한 자라고 선포한 분을 방면하지 않았을 때 참으로 지독한 불의를 행하였다. 그는 그의 아내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그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양심을 거슬러 구세주를 채찍질하였으며, 군병들이 그를 조롱하고 학대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그에게 자기 인격의 신비를 나타내 주시겠는가!
“빌라도는 그의 죄수에 대하여 더 이상의 계시를 들을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는 주님의 왕국의 본질과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분명히 들은 바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주님의 무죄를 공공연하게 인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이 모든 빛과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을 매우 불의하게 대우하였으며, 마음속으로는 줄곧 그는 무죄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군병들이 그를 지독히 모욕적으로 다루도록 내버려 두었다.
요컨대, 그는 죄를 지음으로써 대답을 들을 기회를 잃었으며, 자기의 복을 저버렸고, 양심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아 버렸던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빌라도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혜로운 시기와, 자기들 앞에 열려 있는 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로 들어 가기를 거절하고 죄된 길을 택하면 그 문은 종종 닫혀 버리고 다시는 열리지 아니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건네신 '초청의 날'과 같은 그러한 일이 있다. 그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아니하면 그들은 종종 내버려져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된다. 그리고 자기들이 뿌린 죄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바로 왕과 사울, 그리고 아합의 예가 그러했으며 빌라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기를 택하지 아니하고 자기 양심을 대가로 지불하며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를 더 좋아했다.
또한 잘못인 줄을 알고 있었던 것을 행하기를 더 좋아하였다.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라일 주교)
위에서 지적한 것에 덧붙여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하여 수난을 받으시도록,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게 될 만한 것은 어떤 것도 말하지 아니하시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정해져 있었다!♥
사실 빌라도는 도덕적으로 진리를 받을 능력이 없었다. 그에게 명확한 대답을 해 주었다 해도 돼지에게 진주를 던진 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세주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가 자기의 신성을 확언했었다면 그것은 빌라도가 그를 방면하기 위하여 찾았던 바로 그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우리 주님의 침묵은 올바르며 또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들 중의 일부였다.
끝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본보기를 통해, “말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전 3:7)♥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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