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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42 빌라도 앞에서의 그리스도 1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 John 842 빌라도 앞에서의 그리스도 1

En Hakkore 2026. 6. 3. 10:50

빌라도 앞에서의 그리스도1

가야바는 자기 옷을 찢은 후,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라고 말하였다.

즉 그는 신성 모독 하는 자이다. 그러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이 말을 함으로써 그는 자기의 불편한 양심을 드러낸 것이다.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라는 말은 가야바가 주재한 모의 재판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즉 이렇게 하여 그는 그가 원한 대답, 즉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는 말을 즉시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승리했다고 잘못 이해하고 의기양양해져서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이처럼 이스라엘은 그들의 메시야를 정죄하였다. 즉 반역한 인간이 그의 하나님을 정죄한 것이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마 27:1, 2). 이렇게 하여 다음의 주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막 10:33, 34). 이 점이 요한이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사항이다.

“[그 때] 그들이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18:28).

“그 때” 즉 마태복음 27:1에 기록되어 있는 공회의 결정이 있은 후에, “관정으로” 즉 빌라도의 관정으로 “그들이 끌고 가니” 주님은 여전히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양처럼 그렇게 가셨다.

마가는 그들이 주님을 “결박”하였다고 말하고 있다(15:1).  “새벽이라.”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님의 원수들은 밤새도록 그를 칠 궁리를 하였다!

슬프게도 인간은 선한 일보다도 악한 일에 대하여 더 많은 열정과 힘을 쏟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그것에 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토론에는 반나절이나 지치지도 않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거나 또는 오페라를 구경 갔을 때에는 세 시간 동안이나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한 시간 여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에는 설교자의 이야기가 길다고 불평을 한다.

“새벽이라.” 이제 유대인들의 한 가지 목적은 빌라도로 하여금 한시라도 빨리 주님께 사형을 확정하게 한 것이었다.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18:28).

관정은 이방인의 영역에 속하는 곳이었으므로, 그곳에 들어가게 되면 유대인들은 의식적으로 더렵혀지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 때는 유월절이 가까웠으므로 이를 범하였을 경우 깨끗하게 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유월절에 몹시 참여하고 싶었으므로 관정으로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빌라도를 이용하여 그들의 악한 계획을 성취하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관정으로 들어가는 일은 삼갔다! 이것은 마음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아니하는 신앙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증거해 준다.♥

그들이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두려운 말씀을 듣게 된 것도 당연하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 28).

바로 이 사람들이 지상에서 계획되었던 가장 사악한 행위에 가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럽힐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메시야를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유월절에 참여할 자격을 잃지 않으려고 빈틈없는 주의를 기울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자신의 영적인 생활 태도보다도 세례를 어떻게 베풀어야 옳은 것인가 하는 형식의 문제나 또는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열매 맺는 생활 태도보다도 성찬만을 준수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자들이 있다.

우리도 역시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지” 않도록 조심하자♥

바울이 찬미한 참 십자가와 못 박힌 예수상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즉  의식주의는 그리스도를 배제하며, 또 그리스도는 의식주의를 배제한다”(Mr. H. Bonar).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