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 John 840 빌라도 앞에서의 그리스도 1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 John 840 빌라도 앞에서의 그리스도 1

En Hakkore 2026. 6. 3. 10:49

빌라도 앞에서의 그리스도1(요 18:28-40)

요한복음 18장의 종결 부분이 되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1.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려오신 그리스도 (28절)
2. 공식적인 고소장을 요구하는 빌라도 (29,30절)
3. 책임을 회피하고자 애쓰는 빌라도 (31,32절)
4. 그리스도를 조사하는 빌라도(33-37절)
5. 그리스도의 무죄를 확언하는 빌라도 (38절)
6. 타협을 시도하는 빌라도(39절)
7. 실패하고 만 빌라도의 시도(39절)

앞 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대제사장 안나스 앞에 서신 주 예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 여기서 살펴 보려고 하는 성경 말씀에서는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고 계신 구세주를 보게 된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많은 일이 있었으나 요한은 이것을 생략하고 있다. 즉 18:24에는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 다음에 베드로의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그 다음에는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18:28)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르 이 넷째 복음서는 주님이, 로마가 정해준 이스라엘의 법적 대제사장인 가야바 앞에 나타나셨을 때 있었던 일에 관해서는 정해준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마태복음 26:57-68; 27:1; 마가복음 14:53-15:2; 누가복음 23:54-24:1 을 참고해 보아야 한다. 이 여러 말씀의 내용을 간략해 보기로 하자.

앞 장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재판을 받기 전에 이미 사형 선고가 내려져 있었다(18:14). 그러므로 가야바에서의 심문은 아주 가중한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구세주께서는 지상에서 가장 거룩한 재판정이었어야 할 곳에서 재판을 받으셨다. 실제적으로 그 재판은 역사상 가장 정의를 왜곡시키고 재판의 형식을 남용한 상태에서 선고를 내린 재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놀라운 대조점들을 통해 우리는 지극히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죄인들의 친구께서 수갑과 차꼬를 차게 되셨다.

온 세상의 재판장께서 아담의 타락한 자손 앞에서 심문을 받으셨다. 영광의 주님께서 지독히 악하고 경멸스런 대우를 받으셨다. 거룩하신 분께서 참람자라는 정죄를 받으셨다.

거짓말쟁이들은 진실에 거스르는 증언을 하였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셨다.

가야바와 함께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마 26:57). 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즉 이스라엘이 최종적이고도 공식적인 형식을 취하여 그들의 메시야를 거부하였을 때, 그 민족의 모든 지도자들이 엄숙하게 모여들었다.

그들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주님께 불리한 증인들을 소환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예수를 칠 증거를 찾았다”(마 26:59)는 데에 이들의 파렴치함과 지극히 불의함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산헤드린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위가 없었으므로, 그들이 주님을 빌라도 앞에 데려오려면, 그에게 불리한 고소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 증거들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진실된 것임을 증언할 수 있는 자들이 수 없이 많이 있었으며, 또 그들 자신이 보낸 아랫사람들조차도 지금까지 주님처럼 말 한 자가 결코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였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원하는 증거가 아니었다. 주님을 사형에 처할 것을 극성스럽게 요구하는 데 정당하게 보이는 어떤 증거가 고안되어야 했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