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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30 안나스 앞에서의 그리스도 본문
안나스 앞에서의 그리스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18:13).
구세주께서는 “쫓기거나” “질질 끌려” 가신 것이 아니라 끌려(led)가셨다. 이 표현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주님께서 자발적으로 복종하신 것임을 다시 한 번 알려주신다. 주님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구약시대의 삼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쉽게 “불에 닿는 실처럼” 그의 결박을 풀을 수 있으셨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처럼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유순하고 온순하게 따라가셨다(led).
여기에서 주님은 예언뿐만 아니라 상징(모형)도 성취시키신 것이다. 즉 희생제물로 드릴 각 짐승은 먼저 제사장에게로 끌려갔었다(레 17:5).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먼저 안나스에게로 인도되었다. 주님께서 동산에서 나와 대제사장의 집으로 가신 길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 동편. 기드론 시내 건너, 감람산 기슭에 있었다. 이곳을 나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갈 때 통과하는 문이 바로 “양문”이다(느 3:1, 32; 12:39 요 5:2 이 구절에 대한 이 책의 설명을 참고하라).
“양문”은 성전 가까이 있었는데 희생 제물이 될 짐승은 먼저 기드론 가까이 있는 초장에서 풀을 뜯어 먹은 후 바로 이 문을 통하여 들어갔다. 어린 양도 이때 이와 같이 같이 가셨다!
여기에서 한 가지 대조되는 사실에 주목해 보라, 즉 아담은 동산에서 쫓겨났으나(창 3:24),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나오셨다!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8:13).
요한만이 유일하게 구세주께서 안나스 앞에 인도되어 오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가야바 앞에 서신 일을 기술하고 있다. 안나스와 가야바 둘 다 “대제사장”이라고 불린다.
대제사장이 둘이 있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혼란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기술했으나 어떤 실제적인 정보나 교훈은 제공해 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로마의 통치가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11:49의 말씀을 참고해 볼 때 로마인들은 이스라엘을 위해 해마다 한 명의 대제사장을 선출한 듯하다(행 4:6과 비교해 보라. 그곳에는 그 직분을 담당한 적이 있으며, 모두 살아 있는 네 명의 대제사장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 3:1에 비추어 보면, 그들이 재선되는 때도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그가 죽을 때까지 그 직분을 보유하였다(출 40:15; 민 35:25 등).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는 가야바가 아닌 안나스가 진짜 대제사장인 것이다. 즉 가야바는 행정적인 일에 있어서 공식적으로 승인된 자였지만, 안나스는 종교적인 일에 있어서 가야바보다 우위에 있는 자였다.
바로 이 이유때문에 구세주께서 먼저 인도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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