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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29 안나스 앞에서의 그리스도 본문
안나스 앞에서의 그리스도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이 구절에서의 첫 단어는 “이에”가 아니라 “그러므로”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앞 구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이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즉 베드로가 저항을 한 것에 대하여 꾸중을 하신 후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를 잡아 결박하였다.” 그들은 잔인한 짐승처럼 그들의 먹이에 덤벼들었다. 우리는 구세주께서 예언의 영으로써 말씀하시면서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라고 선포하셨을 때 바로 이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이 주님을 무거운 쇠사슬로 묶었으리라는 데에는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마도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완전한 상징이 되는 “요셉에 대하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시편 105:17,18)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에 대한 원형은 주님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사야 53:5의 말씀에 가장 잘 암시되어 있지 않는가!
이 때가 바로 그들이 수갑과 차꼬로써 주님의 손목과 발목을 “결박”하였던 때가 아니었겠는가! 그들은 왜 주님을 “결박”하였는가? 다음의 네 가지 사실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즉 유다가 그들에게 주님을 단단히 잡으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이다(마 26:48). 그런데 유다가 그렇게 한 것은 누가복음 42:9, 30; 요 8:59등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기억하였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주님이 마치 범법자인 것처럼 다룸으로써 그를 모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주님이 마땅이 죽어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여 그에게 불리한 선고가 내려지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 외에 우리는 상징적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 일이 성취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일어날 모든 일은 그에 대하여 이전에 약속된 상징들과 예언들을 성취해야 했다. 고난을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가장 훌륭한 상징은 이삭이다.
아브라함이 그를 제물로 바치려 하였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를 붙잡아 결박한 것이었다(창 22:9). 제물로 드릴 짐승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시 118:27).
그러나 여기에서 구세주를 결박한 데에는 이보다 훨씬 심오한 의미가 있다. 즉 우리는 죄의 포로들이었으므로 주님께서 그들에게 결박당하신 것이다! 우리의 죄가 바로 주님이 결박당하신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대리인으로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즉 우리의 죄악이 주님의 죄악이 되었다) 나를 덮치므로(시 40:12)라고 외치셨다!
주님이 결박당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로워지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일어났어야 했을 일, 그에 상당하는 어떤 일이 그리스도께 일어났었다는 것은 확실한 법칙이다.
그리고 주님의 인격이 끼치는 효력은 아주 크므로, 그 일이 주님의 육체의 일어났을지라도, 그 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마땅히 치러야 할 그 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결박을 당하여 끌려가심으로써, 후에 승천하실 때에는 주님 자신이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으셨다” (Mr Thomas Goodwin).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결박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히브리서 13:3에서는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갇힌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이 아무리 비열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기억하고 그것에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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