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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92] 감사의 노래 2(사무엘하 22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92] 감사의 노래 2(사무엘하 22장)

En Hakkore 2024. 3. 7. 11:54

사무엘하 22장은 "그리고"(And, KJV,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다-역주)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것은 이 장의 내용이 바로 앞 장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이제부터 살피려고 하는 장은 다윗의 위대한 감사의 시편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편은, 이 장의 서두가 암시하듯이,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수많은 적들로부터 구해 주신 것에 감사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앞 장에서 우리는 사울의 자손들의 처형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서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승리를 거주고 그들의 거인들을 죽인 적에 대한 간략한 서술을 살펴보았다.

또 앞에서 우리는 그런 사건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영적 의미들을 지적했다. 우리는 이 장에서도 동일한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그런식으로 성경은 우리 자신에게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임에도, 안타깝게도 오늘날 그런 일은 크게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때만 성경을 살아 있는 책으로, 또한 오늘날의 필요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역사적 의미와 예언적 의미

사무엘하 21장과 22장 사이의 영적이고 실제적인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사울의 후손들의 처형(이때 처형된 자들은 일곱 명이었는데, 이것은 그 일을 완전하게 마무리 하기 위한 것이었다)은 신자들이 그들의 욕망을 죽이는 것에 대하 상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또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 그리고 다윗과 거인들 사이에 있었던 싸움은 성도가 벌이는 죄와의 싸움이 그들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임을 상징한다. 죽임이라는 행위는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그것은 기쁜 결과를 낳는다.

오른쪽 눈을 빼버리고 오른팔을 잘라내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큰 고통을 낳는다. 그럼에도 그렇게 한 후에는 아름다운 감사가 나타날 것이다. 사무엘하 21장에서는 죽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사무엘하 22장은 "노래"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분명한 연관관계가 존재한다. 우리의 욕망 위에 "죽음"이라는 글자가 새겨질 때, 우리의 마음은 노래로 채워진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 것이 제거될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여호와를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성경에 실린 "거룩한 노래들"을 특별히 그것들의 맥락에 부목하면서 살피는 것은 아주 흥미롭고 교훈적인 작업이다. 첫 번째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에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아니라 애굽에 있는 히브리인들의 한숨과 탄식 소리를 듣는다(출 2:23-24).

그러나 그들이 속박에서 벗어나고 그들의 적들이 홍해에 빠져 죽었을 때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찬양의 노래가 울려나왔다. 또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물을 제공하셨을 때 그들이 불렀던 노래에 관해 읽는다(민 21:17).

모세는 그의 광야 생활을 노래로 끝맺었다(신 31:22).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승리를 거둔 후 노래를 불렀다(삿 5:!). 욥은 "밤에 노래를 주시는"(욥 35:10) 하나님에 관해 말한다-이것은 드물기는 하나 수많은 성도들이 증언할 수 있는 실제적인 경험이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사무엘하 22장에 실려 있는 다윗의 노래와 시편 18편 사이에는 아주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후자의 머리말(上記)을 보라).

사실 그 유사성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 둘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후자가 전자의 개정판이라는 추측 위에서 그것들 사이의 동사 변화(비록 우연한 것이기는 하나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에 대해 설명하려 해왔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내게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것은 내게는 하나님의 영감에 대한 심각한 조롱처럼 보인다. 확실히 성령께서는 그 어떤 수정 작업도 하실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스펄전(C.G. Spurgeon)의 견해가 더 옳다고 여긴다.

"사무엘하 22장에는 다윗이 그 자신의 놀라운 삶을 회고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을 보았던 다른 경우들에 이 시편을 노래했음을 암시한다."

다윗의 이 특별한 노래는 영감을 받아 쓰인 그의 모든 노래들의 특징을 이루는 불변하는 측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노래의 어떤 일반적인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우리는 이 노래 안에서 그 노래의 표면적인 의미와 보다 깊은 의미, 그리고 역사적 의미와 예언적 의미를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모든 의심은 신약 성경의 증언을 통해 분명하게 제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이 노래의 구절들 중 두 가지가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으로 인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그분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다윗보다 위대한 이가 계심을 분명히 밝히셨다.🫰

보다 깊은 의미에서 이 노래는 다윗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의 발언(發言),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권능을 통해 죽음에 대해 승리하시는 것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다(엡 1:19).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은혜롭게 행동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노래한다. 그러나 그는 이 노랫말을 통해 자기 자신을 엄어서 자신의 후손이자 주님이신 분, 즉 모든 어둠의 권세들이 합동으로 공격하고 있는 분께로 날아오른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243

■ 에베소서 1장 19절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