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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89] 감사의 노래(사무엘하 21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89] 감사의 노래(사무엘하 21장)

En Hakkore 2024. 3. 6. 11:36

사울의 자손들의 죽음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하니"(삼하 21:6a).

"우리가 그들을...목매어 달겠나이다"라는 말에 주목하라. 이것은 그들이 왕의 처지를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기꺼이 그 처형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려 했다. 이미 지적했듯이, 이것은 개인적 복수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4절).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이것은 그 처형이 하나님의 정의를 위한 제사이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자기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의 행위였음을 보여 준다.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이것은 사울이 무고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것을 도왔던 자들에게 분명한 교훈을 삼으려는 것이었다.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삼하 21:4b).

만약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것이었다면, 다윗은 그들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곱 사람을 택하는 문제가 다윗의 몫이었기에, 그는 요나단의 아들을 살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7절).

"왕이 이에 아이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삼하 21:8).

처음 두 사람은 사울 자신의 아들들로 그가 어느 첩에게서 난 자식들이었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사울의 딸 메랍이 아드리엘에게서 난 그의 손자들이었다. 사울이 이 다섯 사람들의 어미를 다윗에게 주기로 약속했었던 사실을 떠올려 보라(삼상 18:17).

그러나 사울은 이스라엘의 감미로운 시인의 화를 돋울 목적으로 그녀를 아드리엘에게 주었다(19절).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의 작용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셉 홀(Joseph Hall)은 이 특별한 사건에 대해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위험하다. 설령 그들의 온유함이 그 죄를 쉽게 용서할지라도, 하나님은 아주 오랜 후에라도 그 죄를 크게 책망하지 않은 채 넘어가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삼하 21:9a).

나는 사형에 대한 반대가 늘어나고 있는 이 감정적인 시대에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준 것은 잘못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왜곡하느라 다윗이 이것을 기회 삼아 자신의 오랜 적에 대해 복수했다고 서슴없이 비난해 왔다.

그러나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라도 이때 다윗이 달리 할 수 없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들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 준 것은 사울 집안에 대해 품고 있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에 응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익을 염두에 두고 있던 그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 필요했던 그들의 처형을 잔인한 짓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전체가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는 사울집안 사람 일곱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것이 나았다"(Matthew Henry).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삼하 21:9b).

"이 사람들은 혐오스로운 자, 저주 받은 자,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국가적 속죄물로 정해진 자에 대한 처리 방식과 관련해 하나님이 정하신 바에 따라 교수형을 당한 후 시기적절하게 내린 비를 통해 하나님의 화해의 징표가 제공될 때까지 나무 혹은 교수대 위에 그대로 달려 있었다"(Thomas Scott).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우리는 여호와의 절대 주권과 그분이 모든 제한을 초월하는 분이심을 인식할 수있다. 분명히 그분은 재판관들에게 부모의 죄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금하셨다(시 24:16).

그럼에도 그분 자신은 그런 제한에 묶이시지 않는다.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2-23).

그럼에도 여기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움직여 그 명령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모든 법을 초월하시며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할 자유를 갖고 계심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본문에 실려 있는 모든 내용은 여호와의 주권적 손길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첫째, 처형 장소를 살펴보자. 그곳은 사울 자신의 성읍이었다. 그러므로 그 일곱 사람은 사실상 그들의 집 근처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둘째, 그들이 처형된 방식을 살펴보자.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목 매달렸다는 것은 그들이 그분이 보시기에 저주를 받을 만한 자들이었음을 보여 준다.

셋째, 그들이 처형된 날을 살펴보자. 그들은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에 처형되었다. 그 날이 선택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고 그분의 은혜를 얻으려는 특별한 목적 때문에 희생되었음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삼년 동안이나 추수의 은혜를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때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누가 감히 의심할 수 있는가?🫰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