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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20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 John 820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En Hakkore 2026. 6. 2. 13:30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 지라” (18:6).

앞 구절의 끝 부분에 유다에 관한 말이 기록된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그도 역시 땅에 엎드러졌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그들이 물러가서” 라는 말씀에 주목해 보라.

그들은 주님을 붙잡으러 그곳에 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붙잡으러 앞으로 나서는 대신에 뒤로 물러선 것이다!

그들 중에는 오백 명의 로마 군병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내가 그니라” 하는 주님의 단 한 마디 말씀 앞에 물러서고 말았다.

그들은 예배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당황하여 엎드러졌다! 주님은 단지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그들을 위압하고 압도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말씀은 그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던 바, 바로 그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이름을 공표한 것이었다(출 3:14).

또한 이것으로서 주님의 신적 위엄이 나타났고, 그의 신적 능력이 조용히 드러났으며, 그가 바로 “말씀”(요 1:1) 이시라는 사실이 훌륭하게 밝혀진 것이다!

주님은 그들을 손으로 치지 아니하셨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주님은 두 개의 단음절 (I am)을 말씀하셨을 뿐인데 그들은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때 왜 이렇게 행동하셔야 했는가?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첫째로, 주님이 “나사렛 예수” 이상이신 분, 즉 그가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것을 이보다 더 명백하게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에 자신을 자의로 넘겨주신다는 것, 즉 그들이 그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들에게 순종하였다는 사실이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게 하거 위해서였다.

주님은 사로잡힌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단순히(수동적으로)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는 말씀이 기록된 궁극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즉 자신을 사망에 내어 주고 또 곧 사망에게 복종하실 분께서는 그 배신자의 배반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그를 잡으러 온 자들의 무기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고 (요 10:18, 19), 아무도 그를 붙잡을 능력이 없다.

주님은 여기에서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들이 전적으로 그의 자비를 입고 있다는 것, 즉 지상에서 무력한 존재라는 것과, 그가 그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때 주님께서는 아주 쉽게 아무 방해도 받지 아니하고 조용히 걸어 나가실 수도 있었지 아니한가!

왜냐하면 첫째로,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앞에 엎드려 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 뜻에 유순하게 복종하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님은 그가 자신을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 기꺼이 바치려 하심을 증거하였다.

셋째로, 이로써 그들은 핑게할 수 없게 되었다. 주님의 수난에 관련된 모든 세부 사항은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결정된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가담한 사람들을 단순한 기계로서가 아니라 책임있는 도덕적 존재로서 다루셨다.

빌라도가 그리스도께 사형을 언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내의 꿈을 통하여 경고하심으로써 그 앞에 서 있는 자는 무죄한 사람이라는 분명한 암시를 해주셨다(마 27:19).

그리고 그리스도를 이전에 결코 본 적이 없었을 이 로마 군병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그들은 자신들이 그의 인격의 영광에 대하여 무지하였다고 심판 날에 변론할 수 없다.

즉 그들은 주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결코 목격한 일이 없으며 또 주님을 믿을 기회를 갖지 못하였었다고 말할 수 없다. 주님의 위엄이 이처럼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후에 주님을 체포한 사실은 그들에 대한 정죄를 공정하게 해준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