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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19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 John 819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En Hakkore 2026. 6. 2. 13:29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18:5).

그들은 왜 “바로 당신이요!” 라고대답하지 아니하였는가! 나사렛 예수가 그들 앞에 서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가 잡으러 온 자는 바로 당신이요” 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여기에 “그들과 함께 섰더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유다도 그렇게 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등과 횃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은 보지 못하였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18:3의 마지막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 내용을 확증하여 주지 않는가?

즉 성령께서는 우리가 신인의 인격을 발견하고 알아보기 위해서는 자연이 제공하는 빛 이상의 그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암시해 주신 것이다.

이것은 구세주와 3년 동안 아주 가까이 지냈던 유다의 경우가 잘 강조해 주지 않는가! 이 얼마나 엄숙한 교훈인가!

이것은 또한 “만일 우리가 가리었다면 당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라는 고린도후서 4:3,4의 말씀을 아주 강력하게 예증해 준다.

배신자까지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역시 시계가 흐려졌다. 자연인은 영적으로 눈이 먼 자들이다.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요 1:5).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지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칠때 뿐이다(고후 4:6).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18:5).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는 그리스도와 열 한 사도들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이제 그는 주님의 원수 편에 가담하여 그들의 안내자가 되어 있다.

요한의 이야기와 공관복음서의 내용 사이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자에는 유다가 군병들에게 신호를 주기로, 즉 그가 주님께 입맞춤을 함으로써 군병들이 붙잡아야 할 자를 알려 주기로 약속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다는 그렇게 했고,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붙잡았다. 그러나 여기 요한복음 18장에는 유다가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것은 공관복음서와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요한은 마태와 다른 저자들이 기록한 내용을 말하지는 아니하였지만, 그 대신 그들이 빠트렸던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요한은 배신자가 비열한 신호를 보내기 전에 동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준다. 만일 누가의 이야기와 비교해 본다면 유다가 입맞춤을 하였던 일은 요한복음 18장 9절과 10절  사이에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