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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172 베데스다 못가의 그리스도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 John172 베데스다 못가의 그리스도

En Hakkore 2026. 5. 30. 15:45

“아들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나니” 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거나 발생하게 되는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바꿔 말하면 그가 말씀하신 내용의 참뜻은 이런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그것이 결함이 되는 한계일까? 참으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이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딛 1:2) 이라는 말씀과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약 1:13)이라는 말은 신적 본성 내지는 신적 특성 속에 있는 흠을 가리키는 것이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 말씀들은 신적 완전성을 단언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그리스도의 말씀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아버지의 종으로서의 중보적인 신분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음이 분명한데 거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요한복음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종의 신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 그의 신적 영광을 특징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그 내용이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대한 설명도 그 사실과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자신의 중보자의 직무, 즉 신적으로 지정된 그의 임무를 옹호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가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셨다 하여 그가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다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답변하신 것이다.

세 번째, “아들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 필자는 이 말의 의미가 “아들이 아버지와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그럴까?  왜냐하면 아들은 의지에 있어서 아버지와 절대적으로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그가 아들이신 하나님이라면 그의 뜻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과 완전하게 일치함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적이나 투쟁하는 두 의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에 반대하는 두 하나님이 있다는 뜻이 된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두 최고의 존재가 있다는 뜻인데, 그 말은 물론 용어상으로도 서로 명백하게 모순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의 뜻이 아버지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