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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167 베데스다 못가의 그리스도 본문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5:12,13).
이 구절은 신자들에게 있어서조차도 많은 무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기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 사람은 고침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은인의 명령에 순종했다. 그러나 그는 은인의 신적 영광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지식은 그의 역사의 효력을 경험적으로 알게 됨에 따라 오는 것으로 그보다 앞서 오지는 아니한다.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5:13).
이것은 구세주의 도덕적인 완벽성을 제시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의 온유함을 입증해 준다. 그는 보라는 듯이 법석을 떨지 않고 일하셨다. 그는 순간적인 숭배를 바치는 대중의 우상이나 찬양하는 군중의 중심이 되고자 하지 않으셨다.
그는 인기를 얻고자 하는 대신 그곳을 피하셨다. 그는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대신 “사람의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아름다운 탁월성은 마가복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1:37, 38, 44; 7:17, 36; 8:26 참조).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5:14).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피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병자를 시험하시려고 물러나셨다 새 힘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 고침받은 병자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그를 구해 주신 분을 주님으로 여겨 순종했다.
은혜의 역사가 그의 육신에 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가 기도와 찬양의 집에 갔다는 사실을 통해 여실히 입증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를 보셨다는 말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지극히 복된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군중들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가련한 병자를 '은혜' 로써 대하신 후에 이제 '진리'를 사용하신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그의 양심을 위해 하신 말씀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요구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전 15:34)는 말씀은 여전히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표준이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는 말씀은, 믿는 자는 항상 하나님의 통치 아래 종속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는 말씀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응징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라는 라일 주교는 여기에 병상에서 일어난 자들을 위한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지적한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건강을 회복하면 우리는 죄에 대한 더 큰 증오와, 우리의 태도에 대한 좀 더 철저한 경계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 하는 더 위대한 결심을 갖고 세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5:15).
이것은 전체의 사건에 아름다운 완전성을 부여해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침을 받은 자가 자기의 입으로 그를 구원해 주신 이가 누구신지를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 예수께서 이 새로 난 영혼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시자마자, 그는 그에게 묻고 그를 비난하던 자들을 찾아가 그를 낫게 해주신 이는 바로 예수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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