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 John160 베데스다 못가의 그리스도 본문
첫째로 그는 눈멀어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수많은 사람들의 혼미한 무관심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즉 그들은 지옥의 가장자리에서 즐기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을 위협하고 있는 가공할 위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넓은 길로 서둘러 내려가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길의 막다른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멸망을 식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본성적인 인간은 실로 눈멀어 있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 4:19).
'다리 저는 사람' , 곧 절름발이요 앉은뱅이인 자는 걸을 수 없다 이것은 눈먼 자에게 수반되는 상황이다. 영적으로 눈이 먼 자가 어떻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협착한 길을 걸을 수 있겠는가?
“내눈으로 보니 내 심령이 상하는도다” (애 3:51). 또 마음의 눈으로부터 생명의 근원이 나온다(잠 4:23). 그러므로 눈이 나쁘면 몸도 또한 어두울 것이다(눅 11:34).
절름발이, 앉은뱅이 - 그러한 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오려 한다면 그들은 참으로 ‘이끌어져야’만 한다 (요 6:44)
‘혈기 마른 사람들’ - 눈이 먼 자, 다리가 불구인 자, 손이 굳어버린 자들은 볼 수 없고, 걸을 수 없고, 일할 수 없다.
여기에 배치되어 있는 그 순서는 얼마나 놀라운가! 그것들을 역순으로 생각해 보라. 하나님과 함께 걷지 않는 자는 착한 일을 행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마음의 눈이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도록 열려지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걷기 시작할 수 없다.
이것은 신적인 순서로서 그 순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눈이 열려야 하며, 그래야 지각력이 생겨서 우리로 하여금 소위 소명이라 일컫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며, 하나님을 위해서 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봉사를 하도록 준비시켜 준다 그러나 눈이 '멀어' 있는 한 발은 '절뚝거릴' 것이며, 손은 '혈기가 말라' 있을 것이다.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못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다 그들은 그 물이 '움직여서' 그들을 낫게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다림은 헛수고였다. 거기에서 '오랫동안' 기다려 온 수많은 병자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의 병자만이 나을 수 있을 뿐이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거의 쓸모가 없었다.
종교계의 의식들에 있어서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세례나 미사, 그리고 종부성사 등에다 믿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실로 아주 많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영혼의 심한 결핍이 충족될 때까지는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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