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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72] 복위 1(사무엘하 19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72] 복위 1(사무엘하 19장)

En Hakkore 2024. 3. 5. 19:22

늙은 바르실래의 배웅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삼하 19:31-32).

이 사람이 곤고한 상황에 처한 다윗을 도왔던 것에 대해서는 사무엘하 17장 말미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다. 의심할 바 없이 바르실래가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을 그렇게 섬긴 일은 굉장한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만약 그 싸움에서 압살롬이 이길 경우, 그는 그가 한 일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그가 연약한 몸을 이끌고 와서 그의 사랑하는 군주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돕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삼하 19:33).

왕은 그 늙은 신하의 충성과 관대함과 환송에 대해 깊히 감사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복위를 축하하는 잔치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기처럼 죽음이 가까운 사람은 잔치자리의 흥겨움보다는 좀더 진지하고 엄숙한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옳은 생각이었다.

금식해야 할 때가 있듯이 잔치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잔치는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연로한 자는 인간적 쾌락을 적절하게 처리하고 자신의 생각과 애정을 이 세상이 제공하는 최고의 것 이상의 지속적이고 영원한 것에 두어야 한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삼하 19:37).

분명히 김함은 그의 아들이나 손자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바르실래는 떠오르는 세대에 대해 비뚤어진 태도를 갖고 있는 엄격한 냉소주의자가 아니었다.

"연로한 자들은 젊은이들을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 자신이 과거에 젊은이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기쁨을 누렸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지금 자기들처럼 물러나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Matthew Henry).

경험이 많은 자들은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 육신의 어리석음과 이 세상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고 지켜 주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젊은이들에게서 자기들이 과거에 누렸던 적법한 즐거움들을 빼앗으려 하는 극단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책임하에 있는 자들을 보호한다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워 이기적이고 심술궂게 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다윗의 초대에 대한 바르실래의 반응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다.

보답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삼하 19:38).😊

다윗은 바르실래의 제안을 즉각 받아들였다. 그는 그의 친절에 보답하기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자들의 자녀를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늙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지를 내릴 때 바르실래의 후손들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아왔느니라"(왕상 2:7). 이후의 일들이 보여 주듯이, 이것이 다윗이 한 전부가 아니었다.

블런트(J. J. Blunt)는 그의 놀라운 소책자 '성경의 일치'(Cripture Cainadeness)에서 김함이라는 이름이 (진리의 인을 지니고 있는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유사한 언급들에 공통되는 우발적인 방식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언급되는 것을 지적한다.

이런 언급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였음을 주장하는 그 어떤 외적 증거보다도 강력한 확신을 제공한다. 성경에서는 아무런 고안이나 공모 없이 완전한 조화를 보여 주는 특정한 사건들에 대해 언급을 통해 주목할 만한 정확한 일치가 나타나는 때가 있다.

우리가 보았듯이, 김함은 다윗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러나 우리는 다윗이 그에게 자기 식탁에서 먹을 자리를 주고 솔로몬에게 그를 돌봐 주라고 권하는 것 외에는 그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구약성경의 역사서들에서 그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레미야 41장에서 그의 이름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거기에는 느부갓네살이 유대 총독으로 임명해 그 지역에 대한 책임을 맡겼던 그다랴의 살해 사건 이야기가 나온다.

자기들이 저지른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고 갈대아인들의 복수가 시작되리라고 예상한 유대인들은 도망칠 준비를 했다.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렘 41:17, "게롯김함"은 개혁성경 난외주에는 "심함의 거주지"로 번역되어 있다-역주).

"김함의 거주지였던 베들레헴 근처의 이 땅에 대한 언급보다 더 우연한 것은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약 4백여 년 전에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했던 말의 내용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바로 그 베들레헴에서 출생한 다윗이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자기와 자기의 추종자들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의 자손에게 개인적인 혹은 왕으로서의 호의의 징표로사 아주 기꺼이 그 땅 전체 혹은 그것의 일부를 제공했던 것, 그리고 그것이 예에미야가 그것에 대해 언급했던 날까지 김함 가족의 소유로 남아 있었고 그의 이름을 따라 불렀다는 것 이상으로 그럴 듯한 설명이 있을 수 있겠는가?"(J. J. Blunt).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 3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