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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69] 요단강가로 돌아옴(사무엘하 19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69] 요단강가로 돌아옴(사무엘하 19장)

En Hakkore 2024. 3. 5. 19:19

용서받은 자의 용서

여기에서 우리의 영웅을 움직였던 사랑스러운 정신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사무엘상과 사무엘하의 앞부분에서 우리는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은혜는 그를 택하고, 높이고, 용서하고, 보호해 주었다. 또 우리는 "다윗 안에서" 작동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았다.

그 은혜는 그의 삶의 일반적인 법칙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은혜는 하나님이 그를 다루시는 방식의 특징이 되었던 것처럼 그가 다른 이들을 다루는 방식의 특징이 되었다. 부르심을 받아 은총을 얻은 그는 다른 이들에게 은총을 베풀었다. 그는 비난을 받았을 때 되받아 비난하지 않았다(삼상 17:28).

그는 박해를 받았을 때 위협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박해를 감내했다(삼상 19:21). 우리는 그가 자신을 높이거나 명예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기뻐하는 대신 울었다. 우리는 그가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금식했다는 말을 듣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 안에는 밉살스러운 육신의 일들에도 불구하고 귀한 성령의 열매들 역시 존재한다. 그것들은 늘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거나 우리 자신에게 인식되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보이고 그분께 승인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그가 관여했던 모든 일에서 - 한동안 사탄에게 휘둘렸던 때를 제외하고 - 자기 권력의 확대나 설욕(雪辱)을 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은혜롭고 친절하게 다른 이들을 섬겼다.

이에 대한 복된 예는 사무엘하 9장에서 나타난다. 그는 "사랑을 받는 자녀와 같이"(엡 5:1)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려 했다. 아비새가 에누리 없는 의를 수행하고자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호와의 마음 안에서 그를 향한 심판보다 긍휼이 앞섰던 것처럼, 다윗의 마음 안에서도 그와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그가 우리아에게 저지른 통탄스러운 죄를 용서해 주셨을 뿐 아니라, 이제 그를 압살롬의 살의에 찬 계획으로부터도 구해 주셨다. 그러니 그런 그가 어떻게 자신의 가장 비열한 적의 죽음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아, 사랑하는이여,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또한 죄인들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사자를 길들이고 늑대를 온순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다윗을 넘어 그가 그토록 탁월하게 예표하고 있는 복된 분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사건을 통해 복음에 대한 사랑스러운 예표를 얻는다.

복음의 웅대한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자신의 최악의 적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뿐 아니라, 그들을 환영하시고 값없이 용서하신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분께 구해야 하고, 그분의 주권에 복종해야 하고, 회개자의 모습으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그분 앞으로 나아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들을 그분의 통치적 긍휼에 맡겨야 한다.

그것이 시므이가 한 일이었다. 그는 다윗과 화해하기로 결심했고, 그에게 나아갔고, 그 앞에서 절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윗이 그를 향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사랑하는이여, 이것은 왕 중의 왕께서 당신에게 하실 말씀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그분을 향해 들었던 무기를 내려놓고 그분을 믿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나님의 영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은혜롭게 어루만지셔서 그들 역시 그렇게 할 수 있게 되기를!😊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