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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67] 요단강가로 돌아옴(사무엘하 19장)
En Hakkore 2024. 3. 5. 19:18유다 지파의 선수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삼하 19:15a).
그가 마지막으로 그 상가에 섰던 때 이후로 상황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가! 그때 그는 수많은 유대 지파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 압살롬을 피해 달아가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반역자는 죽었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지파 사람들의 애정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로 인해 지파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사람을 보내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14절)라는 말을 전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다는 것과 자기가 백성들의 충성에 의지할 수 있음을 확신한 다윗은 임시 진영이 있던 마하나임을 떠나 그 유명한 강가로 나아갔다.
그가 이처럼 천천히 행동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정말로 백성들이 자기가 그들을 다스려 주기를 바라는지 알아봄으로써 자신의 입지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의 힘이 아니라 백성들의 바람에 의지해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삼하 19:15b).
다윗이 사독과 아비아달을 돌려보내 자신에 대한 유다 장로들의 태도를 알아보게 했던 것을 떠올려 보자(11-12절). 그가 다른 지파의 우두머리들과도 협의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과 협의해 함께 행동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이후의 여러 가지 나쁜 결과들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Thomas Scott).
비록 그것이 시간을 좀더 늦추는 것이 되었을지라도, 이스라엘 여러 지파들이 함께 행동했더라면 훨씬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편파적인 태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시된 자들은 슬픔을 곱씹고, 조만간 불만을 드러내고, 결국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 후 1백년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의 열 부족이 이스라엘 왕국으로부터 갈라져나갔고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유다 지파 사람들이 다윗을 맞으러 온 장소는 기념할 만한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곳은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명령을 받아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써 그들에게서 "애굽의 수치"를 떠나가게 했던 곳이었다(수 5:2-9).
그곳이 그런 이름을 얻은 것 역시 그 사건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길갈"이란 "떨어져 나가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에 우리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읽은 적이 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삼상 11:14). 그렇게 역사는 실질적으로 반복된다.
시므이와 시바의 마중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삼하 19:16).
때로 우리는 낙심으로 가득 찬 삶의 한가운데서 유쾌한 놀람을 경험한다! 시므이는 다윗을 환영하러 나온 사람들 가운데 섞여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그를 비난하고 저주했던 자이기 때문이다(삼하 16:5-6).
주석가들은 이때 시므이가 다윗에게 보인 우호적인 태도는 인간적인 신중함이나 자기 보존의 본능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런 해석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여긴다. 사실 이때 그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다음 절에서 우리는 그가 베냐민 사람 천 명과 동행했다는 내용을 읽기 때문이다(17절). 아니다. 나는 본문 14절에 비추어 이것을 어떤 사람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때 그분이 그의 적들로 하여금 그와 더불어 화평하게 하시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실례라고 믿는다.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삼하 19:17).
매튜 헨리가 잘 지적했듯이, "아마도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넌 이후로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엄숙하게 그리고 이보다 더 특별한 사건과 더불어 그 강을 건넌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때 거짓말쟁이 시바가 다윗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시므이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시므이가 더러운 혀를 놀려 다윗을 비난했다면, 시바는 그에게 사악한 거짓말을 하면서 선량한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했기 때문이다(삼하 16:1-4).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므비보셋이 왕에게 잘못을 깨닫게 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왕의 호의를 보다 굳건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삼하 19:18a)
"이것은 성경에서 강을 건너는 배가 언급되는 유일한 경우다. 성경에는 강을 건너는 다리가 언급되는 경우가 없다. 그 당시 사람들은 대개 강을 걸어서 건넜다"(Thomas Scott).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삼하 19:18b).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중요한 예시를 발견한다. 그분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분은 가장 반역적인 마음을 가진 자라도 얼마든지 제압하실 수 있다. 성령께서는 타락한 자들 안에서도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고 그들을 제어하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에게 선택받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도들조차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적들의 증오를 누그러뜨리시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자기들에게 우호적이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거의 깨닫지 못한다.🥺
인간의 삶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고자 하는 무신론의 정신이 이 악한 세대에게 점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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