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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26] 기드론 시내를 건너감(사무엘하 15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26] 기드론 시내를 건너감(사무엘하 15장)

En Hakkore 2024. 3. 2. 12:35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삼하 15:26).🫰

이것은 참으로 값진 순종의 자세다. 여호와께서 그가 지은 죄 때문에 그를 징계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그 문제를 통치자이신 그분의 뜻에 맡겼다. 그는 최상의 상황을 소망했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도 대비했다.

그는 자기가 거룩하신 분의 계속되는 진노를 겪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의 결과를 하나님의 통치적 은혜에 위임했다.🤞

사랑하는이여,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이라는 그 어두운 시간에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을 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를 하늘에 대한 반역과 인간에 대한 두려움 모두에서 보호해 주었다는 것에 신중하게 주목하라. 우리가 모든 사건들 속에서 지존자의 제어하시는 손길을 잘 분별할수록, 우리의 마음의 평안은 그만큼 더 커질 수 있다.(큰소리로 아멘!)

이 사건들 속에는 우리의 마음에 새겨 둘 만한 중요하고 값진 교훈들이 많이 들어 있다. 우리가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행위다. 그분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출 33:19).💕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들 중 하나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 그분 앞에서 그 약속의 이행을 탄원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다윗의 그런 믿음이 당시 그가 처한 그 고통스러운 곤경 속에서 그를 인도했다고 믿는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얼마나 분개하고 계신지 알지 못했다. 또한 그는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분의 보좌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겼던 것이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던 많은 이들이 다른 모든 위로의 샘들이 완전히 말라버린 상황에서 욥처럼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라고 말하면서 위안을 얻어왔다.

죄에 빠져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자들은 자기들이 의심할 여지없이 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다루실지는 알지 못한다. 그분의 신호와 징조들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들은 자기들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죄책감 때문에 고통당하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분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 될 것이다.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욥 9:4).

그분으로부터 그리고 그분에 의해서가 아니고는 최소한의 도움도 얻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 그러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윗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즉 죄로 물든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고, 통치자이신 그분의 은혜로운 뜻을 기다리고, 그분의 결정에 기꺼이 따르는 것뿐이다.😊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삼하 15:25-26).

바로 여기에 폭풍에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닻이 있다. 비록 그런 믿음이 즉각 안정과 평안을 제공하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은 비참한 절망에 빠진 자가 발을 딛고 설 "바위"를 제공해 준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죽을 누가 알겠느냐"(욘 3:9) 혹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삼하 12:22)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절망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4). 그러므로 우리는 위로부터 더 밝은 빛이 내려올 때까지 그 바위 위에 머물러야 한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