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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27] 감람산에 오름(사무엘하 15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27] 감람산에 오름(사무엘하 15장)

En Hakkore 2024. 3. 2. 12:36

앞 장에서 끝냈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자.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마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삼하 15:72-28).

비록 그들이 거룩한 일을 통해 자기를 섬기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으나, 다윗이 그들의 섬김을 업신여겼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이 책임을 맡고 있는 자리로 돌아감으로써 그리고 그곳에서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윗에게 알림으로써 그를 더 크게 도울 수 있었다.

다윗이 그들을 얼마나 신임했는지는 그 노련한 전략가가 그들에게 자신의 이후의 계획, 즉 자기가 당분간 어디에 머물지 알려 주는 것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 역시 곤경에 빠진 자들이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의 조언을 구할 수 있을 만큼 행동하기를!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이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삼하 15:29).

복된 순종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갈망을 접고 주인의 뜻에 순응했다.🫰

죄로 인한 슬픔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고 가고"(삼하 15:30a).

여러분은 내가 앞 장의 도입부에서 했던 말을 잊지 말기 바란다. 거기서 나는 이 사건 전체를 살피기 위한 핵심적 요소는 다윗의 마음 상태에 들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이 사건 전체를 통해 다윗을 "겸손한 참회자"(the humble penitent)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에 자신을 낮추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죄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자기 자신과 가족과 백성에게 초래한 불행 때문에 스스로 낮추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그의 경건한 슬픔을 나타내는 적절한 증거였다.

그가 머리를 가린 것은 자기를 정죄하고 있음에 대한 상징이었고, 그가 맨발로 걸은 것은 그의 슬픔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사 20:2, 4, 겔 24:17 참고).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이 일이 그가 기드론 시내를 건넌 직후에 발생한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앞 장에서 나는 그가 기드론 시내를 건넌 사건에는 우리 주님이 배신당하시던 날 밤에 그 시내를 건너시는 것을 예시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들어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 누가 여기에서 또 다른 유사성을 보지 못하겠는가?

그 음울한 시내를 건넌 후에 우리 주님께서는 겟세마네로 들어가셨고, 거기에서 그분의 영혼은 "심히 고심하셨다"(막 14:34). 또 거기에서 그분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히 5:7).

그러나 우리는 그 둘 사이의 이런 유사성뿐 아니라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급격한 차이에 주목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윗의 슬픔의 원인은 그 자신의 죄였으나, 그리스도의 눈물의 원인은 그분의 백성들의 죄였다.💕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가니라"(삼하 15:30b).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그리고 다윗과 함께 있던 자들은 자기들의 왕의 슬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다시 한 번 우리의 관심을 우리 구주의 고난으로 돌려서 그것과 다윗의 현재 상황 사이의 또 다른 유사성을 주목해 보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그것을 간과해 왔다.

그리스도를 따라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갔던 제자들은 단 한 시간도 그분과 함께 깨어 있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그분의 고통에 무관심했거나 잠을 통해 육신의 안락을 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이 분명하게 알려 주듯이, "슬픔으로 인하여"(눅 22:45) 잠이 들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울면서 다윗을 따라 감람산에 올랐던 자들은 울면서 구주를 따라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갔던 제자들을 예시한다.

아히도벨의 배신 소식을 들음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삼하 15:31a).

자신의 아들이 자기에게 반역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다윗이 마셔야 했던 가장 쓴 잔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은 그가 견딜 수 있는 평범한 타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히도벨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윗이 신뢰했던 자였고, 그가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 하나였고, 그가 많은 은혜를 베푼 자였다.

또 그는 다윗이 국가의 문제들을 놓고 가장 은밀히 논의했던 자였고, 영적인 문제들과 관련해 가장 가까이 교제했던 자였다. 이것은 그 시편 기자의 진술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시 55:14).

인간의 본성은 변덕스럽고 반역적이다.🥺 우리의 가장 극심한 시련은 종종 우리가 가장 깊이 신뢰하고 가장 크게 친절을 베풀었던 자들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다윗을 따랐던 가드 사람 잇대의 경우처럼(삼하 14:21), 때로는 우리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자들 중에서 가장 믿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친구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15:31b).

어떤 문제가 단독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종종 문제들은, 욥의 경우에서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향이 있다. 다윗이 극심한 시련에 처했던 바로 그 순간에 이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압살롬이 반역했고, 이제 그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총리마저 그를 배신했음이 밝혀졌다.

이것은 다윗이 그에게 보였던 관대함에 대한 사악한 보답이었다.😰 여기에서 다시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이 우리의 복된 주님과 관련해 보다 엄중하고 무서운 사건을 예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아히도벨은 그리스도의 핵심 제자 그룹에 속해 있다가 사악하게도 그분께 등을 돌리고 적들의 편으로 넘어간 유다에 대한 놀라운 예표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마 10:24). 만약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음에도 사람들로부터 그토록 잔인하게 배반을 당하셨다면, 우리 역시 그와 유사한 처지에 놓일 것을 대비해야 한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459

• 이사야 20장 2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 에스겔 24장 17절.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