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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95] 최후 정복(수 11:1-12:24) 본문
[Gleanings in Joshua 295] 최후 정복(수 11:1-12:24)
En Hakkore 2024. 11. 18. 16:20"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지가 오랫동안이라"(수 11:18).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에 대한 기록이 매우 간결하고 그가 얻은 무수한 승리들이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으나, 그 모든 것이 여리고 전투나 10장의 묘사된 싸움의 경우처럼 며칠 혹은 몇 주 내에 얻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승리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얻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라는 표현은 상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의 더디고 빠름은 반드시 시계로만 가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괴로움과 압박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전쟁터에서 싸우는 이스라엘의 용사들보다는 어머니들과 아내들이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로는 "많은 날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 14:1-10을 신명기 2:14과 비교해 보면 사실 그 전체 기간은 7년 정도였다. 여호수아의 본문에 근거하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에 갈렙이 85세였으나 모세가 그를 가나안 정탐을 위해 그를 보냈을 당시에는 그의 나이가 40세였다. 그런데 신명기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기까지 광야에서 38년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전체를 항복시키고 점령하기까지 7년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지가 오랫동안이라" 는 말씀은 여호수아의 시종여일함과 그의 아래에서 섬긴 사람들의 안정된 꾸준함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여리고와 아이성을 함락한 후에 쉬면서 가볍게 전쟁에 임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 완수하기까지 꾸준하게 싸움을 계속했다. 영적 전쟁에 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얼마나 고귀한 모범인지 모른다! 눈앞에 놓인 장애물에 질겁해서도, 무찔러야 할 원수의 규모에 압도당에서도, 중도에 당하는 실패들로 인해 낙심해서도 안 된다.
위로부터 임하는 인내와 단호한 결단을 진지하게 구해야 한다. 믿음의 싸움이 "오랫동안" 이어지지만, 현세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 휴식기를 없다. 그러나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는 것을 확신하고,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을 행해나가야 한다(갈 6:9).🍒
이 권면이 데살로니가후서 3:13에서도 반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이는 우리가 주어진 임무를 이행하는 동안 수고를 게을리 할 소지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악한 성향을 살피고 제어하여 마지막까지 인내해야 한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이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수 11:21).
이들을 대적하여 특별한 싸움을 벌인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 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에, 그 중 열 사람은 돌아와서 이스라엘 여기 점령 가능성에 대해 찬물을 끼얹었다.
그들은 가나안의 성읍들의 견고함을 강조했고, 아낙 자손이" 신장에 장대한 자"들이며, 이에 비하면 이스라엘 사람은 "메뚜기" 같다고 보고했다(민 13:28-33).
그러나 그들이 그처럼 장대했고 더욱이 자기들의 견고한 성채에 숨어 있었으나, 여호수아와 그의 사람들은- 산지의 험준한 지형과 그 장대한 자들을 무찌르기에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들을 무찔렀고, 불신앙적인 그들의 선조들이 그렇게도 두려워했었던 그들을 완전히 쓸어버린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그 공격이 마무리되었다. 아낙 자손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전혀 공포를 주지 못했다. 그들조차도 때가 이르러 무너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거인들도 난쟁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낙 자손들과의 싸움은 후반부로(이스라엘이 전쟁의 기술을 좀 더 연마하고 하나님의 권능과 그분의 선하심을 더 경험한 후에) 미루어졌다. 때로 하나님은 환란과 시험으로 그분의 백성을 극히 예리하게 다루는 일을 뒤로 미루어두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고삐를 붙잡는 자는 고삐를 놓은 자처럼 자랑해서는 안 된다. 사망이야말로 좀 무지막지한 아낙 자손처럼 반드시 상대하여 무찔러야 할 마지막 원수다'(고전 15:26)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헨리 Henry). 아멘!
"그가 또 그들을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는 절대적인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뒤에 사무엘상하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이 거인들의 후손이 완전히 박멸된 것이 아니었고, 그 중 일부가 싸움에서 피신하여 이스라엘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인근 지역에서 피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좀 더 선명히 드러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635
🕊️ 데살로니가후서 3장 13, 16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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