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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92] 최후 정복(수 11:1-12:24) 본문
[Gleanings in Joshua 292] 최후 정복(수 11:1-12:24)
En Hakkore 2024. 11. 18. 16:19가나안의 원주민들은 비단 노골적인 우상숭배자들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도덕성과 인간성의 원리들을 발로 짓밟는 데에서도 극히 파렴치한 범법자들이었다.
레위기 18:3, 27, 28로 돌아가서 3절과 27절 사이에 기록된 내용을 잘 살펴보면, 아모리 족속에게서 드러난 끔찍한 부패성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처절하게 망령된 짓들이 세세히 열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교도 부족들은 마치 몸에 입혀진 해로운 쓰라린 상처와도 같아서, 주변에 나라들을 오염시키는 존재요, 따라서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명하여 그들을 뿌리째 뽑아버려도록 하신 것은 그 주변의 나라들에게는 하나의 자비로운 행위였고, 그 부족들 자신에게는 공의로운 심판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오랫동안 그들을 참아 오셨다. 그러나 이제 아모리 족속의 불의가 가득 찼다는 사실(창 15:16) 이야말로 그들이 경우에 정확히 들어맞는 심판의 요점인 것이다. 엄하고 혹독한 심판의 역사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변명도 하실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런 그 심판의 역사에서 높임과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하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주께서 성읍은 돌 무더기로 만드시며 경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며 외인의 궁성을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음으므로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악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사 24:1- 3).
바로와 그의 군대가 홍해에 잠길 때에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찬양했던 것처럼, 또한 하늘에 속한 무리들이 다음과 같이 찬송하는 것처럼 말이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계 19:1-2).
하나님은 창조의 역사에서는 물론 섭리의 일에서도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만물을 선하게 지으셨듯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대해서도 그는 모든 일을 선히 행하신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손을 통해 행하시는 일들에 대해서도 높임을 받고 찬송 받으셔야 마땅하다. 그의 성도는 물론 악인을 통해 행하시는 일에서도, 그의 은혜의 역사는 물론 그의 보복의 역사에서도,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진리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른 부류의 본문들에 대해서도 정당한 지위를 부여해야만 한다. 곧 개인이든 나라든 그가 심판하시는 것은 사람의 죄악성이 심판을 초래하기 때문이지 그가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에스겔 14장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심판을 선언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겔 14:21-23).
예레미야 22:8-9에서 드러나듯이,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 됨인고 하겠고,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렘 22:8, 9), 애가서의 다음의 증언이 얼마나 명확한지 모른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 23).👍
에스겔서의 다음 말씀 역시 명확하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 33:11). 아멘!
그러므로 심판은 여호와의. "비상한 일"이요 그분의" 기이한 사역"(사 28:21)이다. 심판의 사역은 그분의 자비의 사역만큼 그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어디서든 의를 인정하시고 그것에 대해 일시적인 복으로 상을 베푸신다. 그러나 죄는 언제나 인정하지 않으시고. 조만간 그분의 진노로 화답하신다(잠 14:33).
그러나 심지어 그분의 심판의 검은 구름이 한 나라에서 혹은 악한 체제에 드리워질 때에,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며 행실을 바꾸는 일을 통해 재난을 피하기도 한다(출 9:27-29; 눅 19:41-44; 계 21:22).
예레미야 18:8의 여호와의 말씀이 얼마나 적절한지 모른다.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을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 18:8).
니느웨에서 일어난 일이 그 지극히 확실한 실례이다. 물론 이 본문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 변경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갖가지 원리 중의 하나를- 나라들도 개인들과 똑같이 그들의 행실에 따라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심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언제나 자비하심이 베풀어짐으로써 그분의 심판이 부드럽게 되니 말이다(삿3:8-10). 자, 앞에서 지적한 이 두 가지 면이 여호수아 11장에서 실례로 나타난다. 한편으로 본문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들이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수 11 20).
이는 심판의 때가 무르익었을만큼 그들에게 뿌리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마 23:32; 살전 2:16; 계 14:7, 18). 그러나 반면에 이렇게도 말씀한다.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세운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수 11:13).
곧,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성읍들은 불사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진노 중에도 하나님이 자비를 기억하심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것은 저항하지 않는 가나안 족속들의 경우는 이스라엘이 도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여러 본문 중의 하나이다(참조, 신 20:11).
여리고의 주민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 여호수아 24:11에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아이 역시 동일한 자세를 취했을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629
♥ 레위기 18장 3, 27-28.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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