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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41]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본문
[Gleanings in Joshua 241]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En Hakkore 2024. 9. 8. 15:4419장에 이어지는 내용이 9장 마지막 절들에 대해 우리가 말씀한 내용을 확증해 준다.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와 화친하자마자 원수들의 분노가 그들을 향해 촉발되었다. 구원받은 죄인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죄인이 참으로 회심하게 되면(그의 마음과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높이고, 세상과 철저히 단절하게 되면), 전에 교류하던 동료들이 그를 축하해 주기는커녕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이런저런 식으로 그를 박해하며, 그를 망가뜨리기 위해 혈안이 된다.
그러나 기브온 주민들을 대적한 자들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이 그들을 멸하기 위해서 서로 연합했다. 그들은 이웃의 가나안 족속들이었고 아주 가까운 이웃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그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대적들의 모형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자기에게 해가 되리라는 식의 의심을 전혀 하지 않은 그런 존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
어린 회심자가 불경한 자들과의 교제를 깨뜨리고 나면, 속된 세상의 적개심에 대해서는 다소나마 대비하게 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니 그들이 자기들의 친구들이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아뿔싸, 그는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미 7:6) 이라는 것을(예수님은 마태복음 10:36에서 이를 인용하신다)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영적 싸움과 관련해서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요, 특히나 고통스러운 교훈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는 그의 주님과 처지가 같아진다 해도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주님의 경우에 "그 형제들까지도 그를 믿지 아니" 했고(요 7:5), 그분의 친족들이 그를 향해 "그가 미쳤다"고 했고(막 3: 21), 그분의 제자 중 하나에게 배반당하기까지 하셨다.
방금 지적한 내용은 기브온 주민들을 공격한 자들에게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첫째, 이미 말씀한 것처럼 그들은 가까운 이웃이요 동료 가나안 족속들이었다.
둘째, 그들은 산지에 거주했는데(수 10:6), 언제나 명심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리 사소한 내용도 무의미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 왕들이 산지에 거주했다는 사실은 바꾸고 말하면 그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종교적 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 주님의 미천한 자들을 가장 홀대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의 대접을 받기를 바라므로, 그들은 자기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무자비하다. 산헤드린이 그리스도를 박해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분의 사신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금한 것처럼 말이다. 신자는 또한, 교만의 상징이기도 하다(사 40:4). 누구든 디오드레베를 닮은 자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
셋째, 이 왕들의 귀하게 들리는 이름들에서도 같은 특질이 나타난다(수 10:3).
이 음모의 주동자인 아도니세덱의 이름은 "의의 주(主)"를 뜻하며, 호함은 "야(하나님) 가 보호하신다" 라는 뜻이며, 비람은 "거친" 혹은 "맹렬한"이라는 뜻이며, 야비아는 "높은" 혹은 "고귀한" 이라는 뜻이며, 드빌은 "화자"(話者) 라는 뜻인데, 거짓으로 치장된 자들다운 이름이라 하겠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댁은 네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렇게 말했다.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수 10:4).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자마자 남부 가나안의 가장 강력한 세력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잘못 행한 것이 없고, 오히려 동료 가나안 족속들에게 가장 지혜로운 최상의 처신을 모범으로 보였다. 그러나 바로 이런 처신이야말로 그 주모자가 가장 끔찍하게 혐오하는 것이었다(수 10:1-2).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옛날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그 왕이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뿐만 아니라 그의 성이 다른 부족들의 집합 장소가 되니 말이다. 그러나 아도니세덱은 자기의 군대와 군대에 대해 충족한 확신을 갖지 못하여 네 명의 다른 동료들의 협력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단순히 그들을 돕는 문제였다면, 과연 그들이 그렇게 호의적으로 협력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과 부족 간의 쟁투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니 그들이 참전한 데에는 자기들에게 이득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브온이 "왕도와 같은 큰 성"(수 10:2) 이었으니, 기브온을 서로 차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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