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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40]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40]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En Hakkore 2024. 9. 8. 15:43

2. 선전포고

모형적 가르침은 구약 성경의 지극히 놀랍고도 복된 특질 중 하나이다. 모형적 가르침은 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저작임을 물론, 장차 올 실체를 너무도 정확하게 그려 주는 모형을 제시하여 신약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값진 교훈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는 "구약 속에 신약이 들어 있고, 신약 속에서 구약이 설명된다"는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신약이 전반적으로 구약을 대체시켰다고 추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이 신약에 상당한 빛을 비추어주며 그 세세한 내용의 많은 부분들을 밝혀주는 열쇠들을 제공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신약과 구약은 마치 우리 몸의 두 눈과도 같다 하겠다.

완전한 시력을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하며, 둘이 서로를 보완해 준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이 한 예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지자들에게 크게 의존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서신서들의 실천적인 가르침과 강령들에 대한 생생한 예화들과 사례들을 역사서의 많은 부분에서 얻을 수 있으며, 유대교의 각종 규례들과 의식들을 복음 진리의 여러 가지 면들을 미리 모형으로 보여주며 그것들을 밝혀 주기도 한다.

  여호수아서를 살펴보는 동안 우리는 이점을 특히 중요하게 제시했고, 여호수아서의 중심 인물이 온갖 방식으로 주 예수님을 미리 모형으로 제시해 주며. 가나안 정복 중에 이스라엘이 겪은 경험들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을 그려주며, 또한 엄숙하고도 고귀한 복음의 모형들이 거기에 담겨 있음을 지적해 왔다.

지난 19세기에는 구약의 모형들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강조하고 구약 역사서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이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기독교 세계에 값진 유익을 가져다 준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매우 아쉬운 것은 그들의 구약 모형 선택이 극히 부분적이며, 구원의 길에 특정한 면들에 대해 강조 역시 매우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라합이 믿음으로 행함으로써 멸망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의 반열에 들어간 사실이나, 도피성들이 율법에 의해 징벌을 받을 처지에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찾게 되는 안전을 묘사해 준다는 것 등을 제시한 것은 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진리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와 화친한 사실 역시 앞의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의 역사를 놀랍게 그려준다는 점을 강조해야 마땅하다.

모형들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들보다 더 특별히 묘사하는 것들이 있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들도 있다. 어떤 모형들에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자유로움이 강조되고, 다른 모형들에서는 죄인의 책임이 강조되기도 한다.

기브온 주민들에 대한 앞의 논고들(여호수아 9장을 관한)을 비판적으로 읽어온 분들은 우리가 다른 내용들이 모순이라고 결론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겉모양뿐인 신자들과 외식자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처신을 실례로 보여 주는 것으로 바라보았으나, 뒤에서는 그들을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회개하는 죄인들의 모형들로 간주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앞에서 한 진술을 우리가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이 둘 사이의 모순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사람의 글에는 해당되지 않는 충만함이 있고, 따라서 어느 한 본문에서 정당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적용" 도 다양하게 많다.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은 앞에서는 그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며 기꺼이 제물로 드려질 자세를 갖고 있는 데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뒤에 어린 양이 그를 대신해서 죽는 데서는 죄인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출애굽기 16장에서는 만나와 그리고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 사이에 갖가지 충격적인 비교점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6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둘 사이의 명확한 차이점들을 지적하신다.

성경은 몇몇 인물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타락한 신자들 모두를 그려주는데, 이런 것은 전혀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기브온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처음 행동과 나중에 행동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게 되는데 이에 따라 두 가지 관계 속에서 이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브온 주민들이 사탄의 부추김으로 부정직하게 처신하고 이스라엘을 미혹시키던 때의 모습과, 후에 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여호수아에게 행복하고 자기들에게 드리운 멍에를 기꺼이 지게 되는 모습을 서로 구별해야 한다.

본성적인 상태에서 죄인은 외식자이며, 심지어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구하는 상태에서도 적지 않는 육신적인 면이 그의 노력에 뒤섞여 있다.

여호수아 9:3-6의 기브온 주민들의 악한 행동과, 여호수아 9: 24-25에 나타나는 그들의 정직함과 온유함 사이에 매우 뚜렷한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성경 강해자가 제시하는 각 본문에 대한 "적용" 역시도 뚜렷하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