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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39]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본문
[Gleanings in Joshua 239]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En Hakkore 2024. 9. 8. 15:42"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수 10:2).
성경에서 기브온에 관한 이런 세세한 사항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의도는 다음 세 가지라 본다. 곧 그들을 굴복시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 기리기 위함이요, 뒤이어지는 아도니세덱의 처신의 정황을 제시하기 위함이요, 또한 뒤이어지는 내용이 지니는 모형적 의미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여기서 기브온 주민들에 대해 말씀하는 내용을 보면 그들이 여호수아와 화친한 사실도 놀랍거니와 그들이 전혀 머뭇거림이 없이 종이 되어 이스라엘을 위해 기꺼이 나무패는 일과 물 긷는 일을 감당했다는 사실도 놀랍게 그지없다.
여기서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한 백성이 하나님의 권능의 날에 기꺼이 그에게 굴복하고, 그분의 은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쓰라리고 굴욕적인 일을 담당하는 것을 본다.
회심의 역사에 나타나는 기적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향한 끔찍한 적개심을 죽이고, 교만한 마음을 낮추고, 완악한 의지를 꺾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완전히 굴복하게 하셔서, "순종하는 자식"(벧전 1:14)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수 10:2).
기브온은 변경의 막강한 성이었고 동시에 그 지역의 수도였는데, 그는 큰 성이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길들여졌으니, 예루살렘 왕이 크게 놀랄 만도 했다. 자기들의 강력한 우군이라 여겼던 성을 잃었을 뿐 아니라, 다른 성들이 그 뒤를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 떨었다.
그렇게 막강한 성이 공격을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넘어가버렸으니, 과연 누가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을 상대로 결연히 맞서려 하겠는가? 그는 크게 불안을 느꼈을 뿐 아니라 기브온 주민들을 향한 적개심이 끓어올라 그들을 무너뜨리기로 결심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세 번째 의도를 보게 된다.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헌신의 트로피가 클수록, 또한 그의 지위가 귀할수록, 원수들에게서 당하는 반발이 그만큼 더 거세진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복음 사역자들을 삼으시는 사람들이 사탄의 적개심의 주요 표적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놀라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이 높고 존귀로운 일이요, 뿐만 아니라 신실한 사역자가 겪는 반대야말로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셔서 마귀의 왕국에 침투에 들어가신다는 선한 증표인 것이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야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수 10:3-4).
북쪽과 서쪽 지역의 가나안 족속들의 왕들이 이미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동맹을 맺고 연합 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수 9:2). 그러므로 이 때에는 그들의 연합군이 이미 이스라엘을 공격할 대세를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의 편에 썼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 다섯 왕들은 격노했다. 그들의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당시 진출해 있던 지점에서 더 가까웠으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계획을 미리 예상하고서 기브온을 치기로 결정했다.
예루살렘 왕으로서는 여호수아가 북쪽과 서쪽의 관한 군대들의 임박한 공격에 대비하여 휘하의 군대를 정비하느라 기브온을 지원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 다섯 왕들로서는 변절한 기브온을 쳐서 쉽게 함락시킬 절호의 기회가 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멸망을 재촉할 뿐이었다.
2절은 그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라는 보도로 시작하지만(개역개정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 역주), 그 앞 절은 예루살렘 왕 외에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으니, 본문을 "그가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게 된다.
여기의 복수형의 표현이 예루살렘 왕과 그의 신복들을 다 포함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높으나, 동시에 "그들"이 그 다음 절에 언급되는 네 왕을 미리 언급하는 것일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 네 왕들이 아도니세덱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가 여기 암시되어 있다 하겠다.
이스라엘이 얻은 승리들의 소문으로 끔찍한 공포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를 여기서도 다시 보게 된다. 이는 여호와께서 출애굽기 23:27과 신명기 11:25에서 선언하신 일의 성취일뿐 아니라, 복음이 선포될 때에 일어날 일을 모형적으로 그려 주는 것이기도 하다.
앞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여호와의 권능의 팔이 행한 역사들을 접할 때에 사람들이 각기 매우 다르게 반응했다. 그 왕들에게도 기브온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와 화친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들은 그 기회를 저버렸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믿고 구원 얻는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이 이르는 냄새"지만, 그것을 거부하여 버림받는 이들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 라는 사실(고후 2:15, 16)을 실정적으로 보여주는 엄한 실례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죄인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여기 본문의 경우에서도 나타나고, 또한 바로의 경우에서도, 또한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한 바울의 말씀을 들으면서 "두려워" 한 벨릭스의 경우에서도 나타난다(행 24:25).
아도니세덱은 자기를 낮추고 여호수아와 화친하기를 원치 않았을 뿐 아니라, 인근의 다른 부족들 중에서도 그렇게 하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서 자신의 뜻을 따르도록 그들을 설득했다. 여기서 우리는 강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함께 악에 빠지는 빠지게 만드는 안타까운 사례를 보게 된다.
자기 혼자 범법자가 되는 것도 악한 일인데, 하물며 악의 무리의 괴수가 된다는 것은 극심한 부패를 드러내는 것이요 변화도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는 아도니세덱의 발언은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라는 발언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곧 자기가 의도하는 임무를 모두에게 떠맡기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들이 무슨 이익을 이득을 얻으려고 그런 처신을 했을 가능한 의문이 생긴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자기 땅을 침입할 때를 대비하여 방비하는 편이 더 지혜로운 일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들의 의도는 기브온을 본보기로 삼아서 다른 성읍들이 그들을 뒤따르지 않도록 경고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동자를 부추긴 동기는 그가 동료들에게 호소하는 이유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기 때문" 이며, 또한 1절에서 덧붙이는 대로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 있기 때문" 이었다.
그러므로 그 왕들이 연합 전선을 구축한 것은 그저 자기 보존의 본능 때문만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가 된 사람들을 향한 적개심이 개입되어 있었다. 그들이 과거에 자기들과 나누었던 모든 교제를 끊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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