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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43 장문]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43 장문]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En Hakkore 2024. 9. 8. 15:46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수 10:5).

이는 앞 절의 "화친"에 대항하여 제시되는 것으로, 하나님과 화친한다는 것은 곧 그를 대항하던 싸움을 중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면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 우리를 대적하게 되고, 이는 우리가 아무리 신중하게 처신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바람이지만,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 120:7) 라는 시편 기자의 말을 따라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원수들이 주의 멍에를 지고 그분의 백성의 합류하는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화친함으로써 이교도 이웃들과의 관계를 절연했다.

네 왕은 아도니세덱의 계획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동료인 기브온 사람들을 없애는 일에 동참했다. 이 얼마나 가나안 족속들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건인지 모른다!

그들이 과연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확실히 드러나는지 모른다! 이 다섯 왕이 모두 아모리 족속에 속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아모리 족속은 예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이었다(민 21: 21-23). 당시에는 한 성읍을 함락시키고자 할 때에, 즉시 군대를 투입하여 공격하지 않고, 그 주위를 포위하고 식량을 고갈시키는 과정을 통해 그 주민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쓰는 것이 통례였다.

고대의 성읍들은 높고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단단한 성문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므로, 정면 공격은 희생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 왕들의 무리들은 "기브온에 대진한 것"이다. 그들은 성공에 대해 의심조차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여호수아가 출병하는 수고를 감내하면서까지 기브온 주민들과의 조약을 존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진이 거리가 너무 멀어서 떨어져 있어서 기브온이 함락되어도 병력을 보내기가 어렵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들로서는 기브온 공격이 아주 단순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과 그 이후의 다른 많은 싸움에서 드러나듯이,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었다"(전 9:11).

옛날 애굽의 왕 바로처럼 이 왕들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여호와와 언약을 맺은 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오히려 더 확실하게 행악자들에 대해 진노하시고 그들을 멸망시키신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째서 구태여 이런 공격을 허용하셨을까?

그는 어째서 기브온 주민들이 그처럼 당혹스런 일을 당하게 하신 걸까? 기왕에 그들이 그와 화친을 했으니, 다른 가나안 족속들도 그들과 화친하도록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들 자신의 기원에 대해 깨우치기 위함이다. 그들 역시 "같은 진흙 덩어리"였고, 그들이 본성적으로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동료들의 사악한 침략에서 엄숙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방법을 통해 여호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다.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의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1-12).

그들을 변화시켜서 그들이 자기들을 죽이려 하는 자들과 다른 존재가 되게 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였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사 51:1) 라는 하나님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절실하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서 교만이 사라질 것이요, 또한 우리 자신이 합당한 위치(하나님 앞에서 티끌 속에 있는)를 지키게 될 것이다.

기브온 주민들은 이 다섯 왕들과 똑같이 저주받은 민족에 속한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저주로부터 보호하심을 받은 것은 오직 그들을 구별하신 하나님의 긍휼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이 세상에게서 박해를 받고 있을 때에, 그 박해자들에 속해 있던 여러분을 구원해내신 분이 과연 누구신지를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어째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그런 상황을 허용하셨는지에 대해 많은 다른 답변들을 제시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자기들이 최근에 취한 그 급진적인 행동들을 지금 후회하는지 아닌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과거의 동료들을 대적했다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여호와를 위해 기꺼이 환난을 견디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소속되기 전에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 하라는 그의 권면 (눅 14:28)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맹렬한 시련이 다가올 때에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시련을 허용하신 이유는 그들이 마치 양들이 늑대들의 한 가운데 있듯이 적대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신자는 누구나 조만간 그런 불편한 사실을 실증하게 된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 3:3).

우리 주님이 그런 일을 당하셨으니, 그에게 신실하게 처신할수록 그분의 고난을 우리도 당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브온 사람들이 당한 시련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더 여호와께 매달리게 하고, 여호와와 상관없는 자들과의 교류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자세를 완전히 끊어 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시련은 하나님의 충족하심을 그분의 사랑과 신실하심과 권능을 실증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기브온 사람들은 그런 위경에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들은 이스라엘과의 화친 관계를 무효화하거나 아도니세덱에게 그들을 배반한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강력한 그들의 성벽도 신뢰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절망하여 망연자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산지에 거주하는 아무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수 10:6) 라고 했다.

아마도 임박한 공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서 곧바로 여호수아에게 사자들을 보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원수들이 성 주위에 쳐 놓은 포위망을 뚫고서 여호수아에게 메시지를 전했을 수도 있다.

이 와중에 그들은 정말 복스럽게 처신했다. 최근 그들에게 자비를 보여 목숨을 살려준 바로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호소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그를 완전히 신뢰했고, 그가 과연 군대를 보내 도움을 줄지, 아니면 과연 그에게 그를 능력이 있을지를 의심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만으로 충족하다는 사고를 버렸다. 자기들 스스로 원수를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하기는 커녕, 여호수아에게서 올 구원만을 애타게 바랬다.

기브온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강했으나(수 10:2), 그들은 자기들의 용맹이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낮추어 다른 곳에다 도움을 요청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싶으시다면, 이 점을 잘 유념하기 바란다. 여러분이 대면하고 있는 세력들이 여러분 자신의 지혜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이 막강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호수아의 원형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를 바라보라.✌️

우리의 약함을 깨닫고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강함이다(고후 12:10). 우리에게 능력이 있다는 헛된 망상을 완전히 물리치는 것 외에는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권능에서 강하게 되는 길이 없다. 여호와는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신다"(사 40:29).

반대로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다"(사 31:1). "오직 여호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벧전 2:6). 아멘!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