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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38]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본문
[Gleanings in Joshua 238] 기브온에서의 승리(수 10:1-43)
En Hakkore 2024. 9. 8. 15:41"그 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도록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수 10:1,2).
이스라엘의 혁혁한 전공에 대해 소문을 들은 자들의 반응들이 제각기 달라지는 것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일부는 이스라엘에 성공을 여호와의 탓으로 돌렸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라합(수 2:9-11)과 기브옷 주민들(수 9:9)은 전자의 실례요, 9:1의 왕들과 아도니세덱은 후자의 실례이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훌륭한 의미를 지닌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그 생각에 하나님이 전혀 없었고, 이스라엘의 전진에 아연실색했다. 여리고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아이 성의 함락 소식을 접하고서는 더 불편해졌다.
하지만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크게 두려워하였는데", 이는 십중팔구 이스라엘 군대를 저항하는 데에 그들이 지원해 줄 것을 짐짓 기대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때를 나타내는 표현을 성령께서 강조하고 계신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 아도니세덱이 듣고 [들었을 때에]"(수 10:1).
성경에는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에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일의 영적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열쇠를 얻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예루살렘 왕이 기브온을 치기 위해 다른 네 왕과 연합하는 일이 곧바로 이어지는데, 9장 마지막 부분에 비추어 보면 이것이 모형으로 보여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곧,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평하고 그분의 백성에 합류하기 위해 옛 주인을 섬기던 생활과 세상과 짝하던 일을 버리게 되면, 곧바로 불경한 자들에게서 박해를 당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주께서는 그분의 제자가 될 모든 사람에게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하라" 고 명하셨고(눅 14:28-33), 또한 그분의 종은 신자들에게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 3:3)고 경고한다.
아도니세덱이 기브온 주민들을 살육하기로 결심하는 일에서 우리는 구주의 "후손"을 향한 뱀의 맹렬한 적개심을 떠올리게 된다. 전에는 사탄이 그의 궁궐을 지키고 있어 "그 소유가 안전"(눅 11:21)했으나, 그가 자기의 포로들을 하나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그들을 향해 끝을 모르는 분노를 발한다.
이 단락을 넘어가기 전에 이 첫 절에서 한 가지 다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곧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완전히 "진멸"한 사실이 그것이다. 여기 이 단어에는 지극히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다.
지금 우리의 기업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데에는 철저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정욕에 대해서는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되고, 유혹을 물리치는 일도 단호해야 하며, 세상의 곁눈질 하는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 속에 있는 부패성이 이를 강하게 저항한다. 아이 성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 성의 왕이 한 번 우위를 점하여 이스라엘이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으나, 그들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호와 앞에 스스로 낮추었고, 그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승리하게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들을 대신하여 행하시는 일들을 수동적으로 구경하기만 하고 있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니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다. 그들 편에서도 전술을 바꾸어 자기의 임무를 이행해야 했다.
그들이 전폭적으로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행할 때에, 그가 그들에게 복을 주사 아이 성을 "진멸"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성을 함락시키고 무너뜨리는 일은 이스라엘에게 손쉬운 일에도 유쾌한 일도 임무도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굴욕적이고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욕을 남김없이 죽여야만 하는 그리스도인의 임무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 주님은 그것을 오른쪽 눈을 빼고 오른손을 잘라내는 일에 비유하셨다(마 5:29, 30). 이런 어법을 통해 주님은 그가 우리에게 부과하신 그 일이 힘겹고 혹독한 일임을 암시하셨다.
"눈"은 자연인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요, "손"은 그가 가장 유익하게 사용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눈 하나를 빼고 손 하나를 잘라낸다는 것은 곧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 그만큼 혹독하다는 것을 보여 주며, 또한 우상이 아무리 귀하고, 불의한 처신이 아무리 육체에게 유리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육체에게 아무리 곤욕스러운 일일지라도 정욕들은 남김없이 제거해야 한다. 그것들을 하나님께 굴복시키지 않으면 영원히 심각한 위경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 힘겨운 임무가 불가능하지 않다. 아이 성을 "진멸"한 사실이 기록된 것은 우리를 격려하고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런 승리 뒤에 잠시 소강 상태가 올 수 있지만, 남은 우리의 원수들도 굴복되리라고 낙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원수들이 우리의 영적 전진을 막기 위해 더욱 결연하여 저항이 올 것을 예상해야 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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