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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33] 속임수 중의 존귀(수 9: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33] 속임수 중의 존귀(수 9:1-27)

En Hakkore 2024. 8. 22. 21:16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수 9:18).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다시 부활의 땅으로 돌아갔다는(여호와와의 교제를 회복하고 스스로 중생한 사람들로 처신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여기 나타난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었고, 그들은 그에 따라 처신했다.

만일 육체에 따라 처신했더라면, 그들은 "그때 그때의 정황"에 따라 행하기를 주장했을 것이다. 곧 기브온 주민들이 거짓말을 했으니 그들과 맺은 조약은 원천 무효라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었다.

육신의 생각은 상대방의 거짓으로 인해 맺어진 언약이니 전혀 구속력이 없다는 식으로 추론한다. 그러나 그 족장들은 그런 식의 부패한 원리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뱉은 말이니 구속력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여겼다.

"우리가 거짓에 속아 넘어갔더라도, 그것에 반격할 자유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엄숙한 약속이 행해졌으니, 우리가 해를 입더라도 양심적으로 그것을 준수해야 한다"(토마스 스코트).

그릇된 처신을 두 번 행한다 해도 절대로 일이 바로 잡히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 사람들의 죄악된 수준에까지 내려간다면 이는 배나 더 악한 처사이다. 아무리 이 가나안 사람들이 속임수를 썼다 해도, 그것이 이스라엘의 경솔한 처신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그들 스스로 경솔이 문제를 처리했으니 이제 그 결과도 그대로 당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수 9:18).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그런 속임수에 넘어갔으니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책임이었다.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이 여호와의 존귀하심을 드러내며 스스로 행한 언약을 파괴하기를 거부했으나,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않음으로써"(14절) 초래된 그 악한 결과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전에는 이스라엘 회중의 편에서 "원망" 했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연합이 깨어진 것이다! 이것은 우연한 사건이 결코, 아니었고 들을 귀 있는 자들이 듣도록 크게 외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는 하나님의 채찍이었고, 하나님이 불쾌히 여기신다는 외형적인 표시였다.😥

하지만 이 얼마나 부끄러운 채찍이었을까!
이 "원망"의 직접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 군대가 그 성읍들을 함락시키고 약탈하지 못하고 멈추는 일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여호수아와 족장들이 자기들이 판단하지 않고 여호와의 지시를 기다렸더라면, 일반 백성의 육신적인 탐욕으로 그렇게 원정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불만과 분열의 자세도 표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들을 법적으로 용서하시지만, 흔히 우리의 어리석음에서 나온 열매들을 우리 스스로 먹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수 9:19).

족장들의 일치된 견해와 조화를 여기서 본다. 그들 중 일반 백성들의 반대로 인해 연약해진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들 자신이 한 말이 결부되어 있었을뿐 아니라 그들의 말이 신적인 맹세 하에서 뱉어졌으므로, 그것을 깨뜨린다면 이교도들 앞에서 그들 자신의 맹세를 깨뜨리는 것은 물론 그들의 하나님의 신뢰성까지도 심각하게 해치게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 회중도 그 맹세에 대해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그들이 일시적으로 그것을 잊고 있었다고 믿어야 한다.

여기 이스라엘 회중의 원망은 종교적인 지도자들이나 정치적인 지도자들이 거룩하고 고귀한 원리들에 준하여 어떤 일들을 시행하고 법규를 제정할 때에 밑의 사람들이 그들의 동기를 잘 인식하고 함께 그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비판하고 반대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라 한다.

이 족장들이 견고히 서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이는 참 복된 일이다. 여호와께서 이 일에서 그들을 존귀히 대하셨다. 백성들이 족장들을 원망했다는 언급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니 말이다. 여호와께서 백성의 탐욕을 가라앉히신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