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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5]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5]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En Hakkore 2024. 2. 11. 10:46

여호수아의 순종은 힘과 용기를 요하는 것이었다. 인고(忍苦)의 세월이 이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으며, 가나안 역시 12개월 동안에 정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기나긴 행진과 지리한 원정, 그리고 수많은 맹렬한 싸움을 거쳐야만 비로소 이스라엘이 그들의 기업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분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전투들을 위해서는 날이 짧았다. 그는 태양이 멈추어 서고 달이 머물기를 명령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긴 날이 저문 이튿날 아침에도 그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들려 있었다. 여호수아는 마치 무장을 한 채 잠을 자던 옛 기사(騎士)들과도 같았다. 그는 언제나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그렇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쟁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에는 한시도 싸움이 없는 때가 없다. 사탄이 한 발자국도 포기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나의 정욕과 싸워 승리를 거두면 즉시 또 다른 정욕이 그 추한 머리를 들고 일어난다.

한 가지 유혹을 이기면 열 가지 다른 유혹이 더욱 교묘하게 공격해오는 법이다. 휴식 시간도, 휴가도, 허용되지 않는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막 13:13).

그 외에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인간의 힘과 용맹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요구된다.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1:7).

누군가 잘 지적한 것처럼, "엄밀한 순종이야말로 순종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다 지키기를 바라고 순전하게 힘쓰지 않는다면 순전한 순종의 자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명령들을 취사선택하여 지키는 자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계의 대다수 사람들은 지나치게 엄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외식을 덮기에는 너무 얇은 옷이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등을 돌리고 싶어 하면서도 노골적으로 그것을 인정하면 즉시 자기들의 본색이 드러나므로, "너무 세밀해서도, 너무 철저해서도, 너무 구체적이어서도 안 된다"는 식으로 떠벌린다.

이처럼 임기응변식의 타협적인 태도야말로 기독교 세계를 오늘날처럼 안타까운 지경으로 몰아넣은 주범인 것이다. 여기서 삭제하고 거기서 인간적인 것을 덧붙이는 식이야말로 악이 홍수처럼 밀려오도록 문을 열어 놓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오직 우리의 온전한 마음을 받으시듯이, "주의 모든 계명"(시 119:6)을 다 지키는 순종만을 받으시며, 부분적이며 차별적인 순종은 결코, 받지 않으시는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방종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의 앞에 주어진 규범을 시종일관 올곧게 준수해야 했다, 그 강령들을 시행하는 일이 아무리 인간의 지혜와 지력에 어긋나고, 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완전하고도 지속적인 순종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것을 요구하신다. 그렇게 순종하지 않는 이름뿐인 제자들에게 주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라고 물으신다. 그렇다. 그들 모두는 과연 "이름뿐인" 제자들이다. 주님 자신이 이렇게 선언하시니 말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눅 12:47).

사도는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고후 6:9)-의란 올바름의 표준, 즉 하나님의 법에 준하여 옳게 행하며 처신하는 것인데-라고 말씀했는데, 이는 아마도 여호수아 1:7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일 것이다.🍒

한 청교도에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많은 이들이 자기들의 양심을 절반으로 쪼개어 없애버리는데, 그대가 양심에 조금 흠집을 낸다 한들 어떻겠는가"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그럴 수 없다. 내 양심이 하나님의 것이니 말이오." 마지막으로 순종의 길이 번영의 길임을 주목하라.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제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를 때에 시련이 닥칠 수도 있으나 풍성한 보상이 있다. 물론 반드시 그럴 것이다. 주는 절대로 사람에게 빚을 지는 분이 아니시니 말이다. 그러므로 순종의 길이 곧 축복의 길이다. 그 길을 걷노라면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미소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겠는가!

예, 번영이 곧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믿음이 연단을 받고 인내를 배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상이 크다"(시 19:11)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여호수아가 그렇게 해서 그것을 얻었다. 하나님의 법을 철저히 준수했고, 그리하여 그의 수고에 성공의 면류관이 베풀어졌다. 그리고 우리를 격려하고자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이 말씀을 잊지 말자. 그러나 그 약속은 우리가 계명들을 지키는 여부에 달려 있다 아멘!.🫡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