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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940》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940》

En Hakkore 2024. 8. 12. 15:50

그리스도와 베드로(요 21:15-25)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니라"(21:23).

여기의 주께서 다시 오신다 함은 그의 백성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참으로 명백한 증거가 있다. 누군가 주님이 오시는 것이 모두의 죽음을 뜻한다고 생각해야만 했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죽음이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하여 가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심은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하여 그가 오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으로 기묘하게도 시초부터 주께서 요한과 관련하여 "내가 올 때"라고 하신 말씀은 잘못 이해되고 왜곡되어졌었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자명하게 만든 또 다른 사항은 그의 다시 오심이 임박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즉 어느 때에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그리고 우리가 계속하여 기대하여야 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라고 말씀하셨음에 주의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곧 인간의 생명의 결정자이시라는 장엄한 선언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혹은 "아버지께서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이 우리가 인간적인 전통을 따르려 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경고해 주는지 주목해 보라.

비록 그 전통들이 "형제들"에게서 나왔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 그 그릇될 수 없는 기준치를 갖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이 말씀에 담겨진 좀 더 깊은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베드로와 요한을 이 세대의 초기와 마지막 때에 있어서 교회의 대표자로 보도록 의도되어진 것이 아닌가?

폭력에 의하여 죽은 베드로는 초기 시대를 가리킨다. 그때 순교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거의 일반적인 경험이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살 수 있다는(비록 분명히 살 것이라고 약속되어지지는 않았지만) 희망이 주어진 요한은 이 마지막 시대를 사리킨다.♡

이 시대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진리가 그의 백성들 가운데 널리 알려진 때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요한의 말은 맡은 바 직분은 실제로 끝날까지 이르렀다.

왜냐하면, 계시록에서 주님의 지상으로의 재림, 그리고 나아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사람들을 상당한 길이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승천하심에 대하여 이 복음서가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될 때 참으로 복되다. 이것은 이 복음서에 대한 성령의 가장 완벽한 계획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떠나셨을 때 제자들은 지상에 남겨졌었다. 그러나 여기에 묘사된 것은 아무런 분리도 없는 - 현재에는 영적으로, 미래에는 몸으로도 - 가족이다.

우리가 요한복음에서 구주를 보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제자들이 그분과 함께 있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영원히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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