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928》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928》

En Hakkore 2024. 8. 10. 22:01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그리스도( 요 21:1~14)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이 말씀에는 또한 영적인 암시가 있지 않을까? "생선"은 주께서 그의 종들로 하여금 모으게 하실 수 있는 영혼들을 상징한다.♡

그들에게 생선을 그에게로 가져오라고 명령하심에 있어 그는 자신의 수고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거두어들인 결실을 기뻐함에 있어서도 함께 동료애를 나눌 것을 암시하셨다.

4:36에 있는 그의 말씀을 상기해 볼 수 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자신의 기쁨을 우리와 함께 나누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 복된 사실은 누가복음 15:6에서도 또한 볼 수 있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여기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다.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21:11).

베드로가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다. 21:6에서 이미 말한 것으로 볼 때 이는 참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여기에는 사역에 관련된 다른 중요한 교훈이 제시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여섯 사람이 그들의 힘을 합하여 할 수 없었던 일을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발 앞에 있다가 일하러 나온 지금 해낸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 베드로는 거미줄보다도 연약하였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을 때 일곱 갑절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였다! 이와 비슷한 예를 사사기 6:14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그[기드온]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희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힘이 나오는 곳은 역시 구주의 발 아래서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와 나누는 의식 있는 교제의 정도, 아울러 그의 충만하고 무한한 능력을 끌어내는 정도와 정확하게 비례하여 힘이 전가되어질 것이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29~31).

참으로 많은 사람들, 우리 각자가 이 말씀에 유념해야 한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편 21:14).

그분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결단코 실패하지 않는 그 힘, 가장 연약한 자도 단순한 믿음과 간절한 탄원으로 그를 기대할 때 찾을 수 있는 그 힘을 우리 자신들이 사용하는 일에, 참으로 슬퍼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비참할 정도로 게으런 것이 사실이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물고기가 백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현명한 재간을 자유로이 시험 또는 발휘해 보고자 했던 두 가지 사항이 있다. 즉 물고기의 수와 찢어지지 않은 그물이다.

그들은 베드로가 기적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아 그물이 찢어졌던 지난 번의 사건(눅 5장)을 상기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때에는 기적 후에 주께서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거기에는 고려된 것은 복음 전도자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수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복음의 메시지로 말미암아 구원된 사람의 수를 세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물고기의 기적 후에는 주님은 시몬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고려되는 것은 목사 또는 교사의 일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기적에서는 그물이 찢어졌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다고 고백하긴 하지만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을 정도로 진정으로 그렇게 고백하는 자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기적에서는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택함받은(배의 "오른" 편에 있었던) 자 가운데 한 영혼도 멸망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와 있는 물고기의 수가 뜻하는 영적인 의미에 관해서는, 그 물고기들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세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21:6에서가 아니라 11절에서 세어졌다. 즉 배에 있는 동안이 아니라 "육지"에 도착한 후에 세어졌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늘 나라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들의 수를 알 수 없을 것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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