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911》 본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요 20 : 11-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20:23).
이 구절은 다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라일 주교의 말을 인용하면, "이 구절에서 주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사도들에게 부여하신 사역자 직분을 가진 자로서 수행해야 할 임무에 대하여 규정하시고 있다.
공적인 선생으로서의 그의 일은 이제 끝났다. 이후로는 사도들이 그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 임무는 매우 특수하며 따라서 주의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풀어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의 죄가 사하여졌고 누구의 죄가 사해지지 않았는지 권능을 가지고 선언하고 선포할 능력을 너희에게 부여한다.
유대인의 대제사장이 문둥병에 걸린 자 중 누가 깨끗해졌고 누가 깨끗해지지 아니했는지를 선고하였던 것과 같이, 나는 너희에게 누가 용서되었고 누가 용서 되지 않았는지를 선고할 임무를 부여한다.'"
이 말씀의 범위가 단지 선포할 권한에만 해당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주님께서 사도들이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절대적으로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을 권한, 또는 어떤 영혼을 사하고 사하지 않을 군한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으로서는 그런 권해를 지지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경에 죄를 용서하는 권능은 항상 하나님만의 고유의 특권이라고 되어 있다.
유대인들도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라고 말했을 때 그 사실을 인정하였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임무를 부여하실 때 그 큰 원칙을 전복시키고 변질시켰다고 보는 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둘째로, 구약 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이 어떤 일들을 행하리리라고 선포할 때 그들은 위임받아 그것들을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에게 임무가 주어지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로 되어 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1:10).
이것은 그가 뽑고 파괴하는 등 그 일들을 선포할 뿐임을 뜻한다. 에스겔 또한 "내가...성읍을 멸하러 올 때" 라고 말하였다(43:3).
셋째로, 사도행전이나 사도들의 서신들 둥 그들이 직접 누구를 사면하거나 용서해 주는 일을 행하는 예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고 말했을 때 나, 바울이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한다"(행 13:38)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죄를 사하시는 자가 되심을 일컫은 것이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죄를 용서하도록 분부하셨을 때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권한을 그들에게 부여하신 것이 아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께만 속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도들에게 내리신 분부는 죄가 용서되었음을 그의 이름으로 선포하라는 임무였다."
본문에 내포되어 있는 아름다운 상징적인 그림에 찬양을 드리며 이 고찰을 끝마치기로 하자.
본문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높은 데의 그리스도를 "육신신ㅡㄹ 따라"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즉 영으로 알 수 있다. "나를 붙들지 말라...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20:17).
둘째, 신자들은 새로운 자격, 즉 "형제들" 이라는 자격을 부여받았다(20:17),
셋째, 신자들은 새로운 신분, 즉 하나님 앞에서의 그리스도의 신분과 같은 신분을 부여받았다(20:17).
넷째, 신자들은 새로운 위치에, 즉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위치에 놓여졌다(20:19).
다섯째, 신자들은 새로운 축복을 보증받았다. 즉 "평화"가 이루어지고 그들에게 부여되었다(20:19, 21).
여섯째, 신자들은 새로운 특권, 즉 주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는 특권을 부여받았다(20:19).
일곱째, 신자들은 새로운 기쁨, 즉 살아나신 주님을 뵙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20:20).
여덟째, 신자들은 새로운 임무를 위임받았다. 즉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처럼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상에 보내졌다(20:21).
아홉째, 신자들은 새로운 내재자, 즉 성령을 받게 되었다(20:22).
이 모든 것은 "주 중의 첫날"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신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새로운 시작, 즉 기독교가 유대교를 대신하기 시작한 것을 암시한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