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908》 본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요 20:11-23)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20:20).
우선 이것은 놀란 제자들에게 그들 앞에 서 있는 이가 정말 그들의 구세주임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물질로 된 몸을 가지셨으며, 그들에게 나타난 존재가 유령이 아님을 그들의 눈으로 직접 보도록 하셨다.
그는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알고 있던 그분과 똑같은 분이심을, 그리고 부패하지 않고 인간의 몸을 취하고 살아나신 분이심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생략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누가는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24:39)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이 셋째 복음서에 기록되었음은 매우 적절한 일이다.
누가복음은 인자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넷째 복음서에 "그가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고 기록되었음에 주목하라. 누가는 "손과 발"을 보이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 차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여기에서의 요한의 기록은 "발"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발도 손과 함께 목 박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옆구리"에 관하여 언급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19:34 참고).
그의 찔린 옆구리를 통하여 사랑의 보좌가 있는 가슴에 이르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그리고"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이 행동과 앞 구절 끝 부분의 그의 말씀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해 준다.
그의 손과 옆구리에 나 있는 표지는 그의 정체를 확인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승리를 거둔 싸움의 증거로써 제자들에게 제시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표지는 그가 이루신 "평화".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의 토대가 바로 십자가상의 그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증오가 제거되어졌고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는 십자가의 표지를 가리키심으로써 이 일들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표지는 그의 거룩하신 몸에 여전히 남아 있다(계 5:6 참고). 우리 대제사장께서 중보하실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 이 표지들을 제시하실 것이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은 이 표지로 인하여 회개하게 될 것이다(슥 12:10). 그리고 이 표지들은 심판날에 원수들을 대면하여 그들을 정죄할 것이다.♡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0:20).
그들은 분명히 큰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소망이 성취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충만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이제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16:22). 그러나 여기에 나타나 있는 중대한 차이점에 주목하라.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
둘째로, "[그러므로]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였다."
평화는 그의 완전하게 이루신 일을 통해 온다. 그리고 기쁨이란 그의 복되신 인격에 전념함으로써 오는 결과이다. 이것은 우리 마음을 위해 유용하고 귀중한 비밀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슬픈 처지에 있는 한 기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처지를 변화시켜 주시지 않은 점에 주목하라.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아 두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 처지를 초월하게 해주셨다.
베드로전서 1장에 이와 동일한 원리가 예증되어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환난의 큰 싸움을 견디고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에 대하여 읽을 수 있다. 그들은 핍박받고 흩어졌으며 고향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6절). 그리고 그 사도는 구세주의 인격에 대하여 언급한 후 다시 한 번 이렇게 덧붙인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8절).
그들의 처지는 변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으로 그 처지를 초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쁨의 큰 비결은 그리스도께 전념하고 그와 교제를 나누는 이것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