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907》 본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요 20:11-23)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20:18).
"죽음의 첫 소식이 여자를 통해 왔듯이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의 첫 소식도 여자를 통해 왔다. 그리고 장소 또한 서로 일치한다. 그들은 둘 다 동산에 왔었다"(Bishop Andrews).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예수"가 아니라 "주를 보았다"라고 말한 점에 주목하라. 마가는 제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 처음에 보인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16:10, 11).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일반적으로 겪게 될 반응에 대한 슬픈 전조이다! 그가 전하는 기쁜 소식을 신속하게 영접하는 자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복음을 기꺼이 영접한 듯이 보이는 자들이 바로 가장 분명하게 불신을 나타내는 자들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20:19).
우선, 성령께서 여기에서 이것이 첫째 날의 광경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점에 주목하라. 이날, 곧 그리스도인의 첫 안식일에 "제자들은" 세상과 떨어져서 "모여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신약 시대가 끝날 때까지 주 중 첫날은 그러한 날로 지켜진 것이다.
즉 이때부터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이 세상적인 일과 관심사들로부터 떠나 안식하며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날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처음부터 비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거룩한 행위를 반대하고 증오를 나타낸 점에 주목하라.
여기에서 함께 모여 있는 자들은 "사도들"이 아니라 "제자들" 이라고 칭해져 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요한복음서에는 그런 목적을 모인 자들을 "사도들"이라 부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제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가족임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이것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말씀이다. 문들을 "닫아" 둔 것을 언급한 저자는 요한이 유일하다("닫다"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빗장을 지르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을지라도 죽음을 정복한 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허락을 얻기 위해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으셨다. 우리의 부활의 몸은 한계를 가진 인간의 육체와는 다른 것이다.
이는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15:43).♡ 우리에게 주님께서 열 사도에게(도마는 거기에 없었다) 하신 인사를 숙고할 때 우리는 큰 기쁨을 얻을 것이다.
주님의 고마우신 인사는 참으로 감동적이며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베드로는 그를 부인했었고 다른 사도들은 그를 버렸었다. 그런데 그는 그들에게 어떻게 오셨는가? 그들에게 그렇게 했던 행동에 대해 변명하라고 하셨는가?
아니면 모든 것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그렇게 불충한 제자들과 아무 관련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너희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말씀하셨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의 갑작스럽고 예고 없는 출현이 일으켰을 모든 두려움을 그들에게서 없애 주고자 하셨다. 그는 제자들의 각자의 불안한 양심을 진정시켜 주고자 하셨다. 그들의 죄를 없애 주셨으므로 이제 그는 두려움도 없애 주실 수 있으셨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너희의 배반과 불신을 헤아릴 심판자로 온 것이 아니며, 또한 나는 너희에게 상함을 입은 자로 너희를 책망하러 온 것이 아님이니라. 오히려 나는 비난과는 전혀 다른 것을 주러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이 인사는 평화의 임금께서 하신 복된 인사이다. 그리고 다름 아닌 그분만이 누구에게라도 평화를 주실 수 있다.
주님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 천사들이 부른 축가의 주제도 바로 "평화"였다. 그러므로 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최초로 선포하신 것도 바로 "평화"였다.
또한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적으로 온갖 비참한 실패를 범한 우리가, 작위적이거나 부작위적으로 온갖 죄를 범한 우리가, 온갖 극렬한 논쟁과 통탄할 분열을 일으킨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그를 뵙는 그날에도 그는 "평화'를 가장 먼저 선포해 주실 것이다.
그날의 그의 인사는 "부끄러워할지어다"가 아니라 "평강이 있을지어다"가 될 것이다. 어떻게 그러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그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같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영원"이 시작될 때 그가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곧 "평화"가 되리라는 언약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