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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905》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905》

En Hakkore 2024. 8. 8. 15:08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요 20:11-23)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20:16).

이는 마리아가 그제야 그리스도를 알아 보았음을 나타내 준다.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 10:4). 여기에서 양들 중 하나가 착한 목자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다. 그는 단 한 마디 "마리아야" 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는 자를 예배하는 자로 바꾸시기에는 그것으로 족하였다. 이는 말씀의 권능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그녀는 그의 발 아래 엎드려 "랍오니" 라고 외쳤다. 그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의 선생님" 이라는 뜻이다.

마리아의 헌신과 신실함 그리고 인내로움은 큰 상을 받았다. 이제 그녀는 온갖 것 중 그녀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우신 분께서 죽음을 이기셨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슬픔이 끝나고 기쁨의 잔이 넘치게 되었다.♡

이 그림에는 지극히 아름다운 작은 장면이 있는데 대개는 그 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시자마자 그녀는 "몸을 돌이키고" "랍오니" 라고 말하였다.

그가 처음 말씀하셨을 때에 그녀는 동산지기인 줄 알고 그에게서 돌이켜 무덤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름을 그녀를 부르시자 그녀는 무덤을 등지고 그의 발 아래 엎디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은 바로 그를 알게 될 때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에게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20:17).

필자는 이 말씀이 이중적 의미를 가졌으며 이중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나를 붙들지 말라"는 말씀의 직접적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설명해 주신 그것이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마리아는 주의 발 아래 엎드려 술람미 여자의 말을 기억하면서 그를 붙잡으려 한 것 같다.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놓지 아니하였노라"(아 3:4).

그러나 주께서는 즉시 그녀를 저지시키시고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 다음 바로 이날 아침, 대제사장들은 여호와 앞에서 열매의 첫 잔을 흔들어 바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첫 열매인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앞에 자기를 바치심으로써 그 상징을 성취시키고 있었다" (Companion Bible).

이것은 마리아에게 하신 주의 말씀의 첫째 의미를 밝혀 주는 열쇠임이 분명이다. 왜냐하면 상징들을 매우 주의 깊게 기억하시는 주님께서 레위기 23:10, 11에 지시된 바 있는 이 상징을 소홀히 여기셨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의 범위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모든 말씀 속에는 우리가 능히 다 헤아릴 수 없는 풍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 말씀들은 직접 들은 자들에게 먼저 적용되지만 또한 항상 그보다 더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여기의 두 말씀도 그 경우에 해당한다.

"나를 붙들지 말라."

다른 공관복음서에는 이 말이 없다. 따라서 여기에는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으며 그 적용 범위도 광범위함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8:9에는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가서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의 기록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복음서들은 각기의 고유한 범위를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다.

마태는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계보를 따라 다윗의 아들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자녀들과 관련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즉 그를 "육신에 따라" 알지 아니하는 지체들로 이루어진 새 피조물의 머리로서(고후 5:16)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최초의 암시이다.

다시 말해서, 그 말씀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새로운 관계, 즉 아버지 집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자기 자신과 연결시켜 주신 사실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이 말씀이 마리아에게 하신 세 번째 말씀이라는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 왜냐하면 제 삼이라는 수는 부활을 뜻하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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